등록 : 2012.11.28 19:43
수정 : 2012.11.28 19:43
|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
아랍의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2011년 아랍혁명 이후, 중동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던 미국은 조금씩 쇠퇴하기 시작했고, 미국의 지원을 받아 군사력으로 중동정세를 뒤흔들던 이스라엘은 고립되어 갔다. 여기에 최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과 8일 만의 휴전협정, 1년 넘게 지속된 시리아 내전과 레바논까지 번진 정파 갈등, 핵 시설을 둘러싼 이란-이스라엘 갈등은 중동의 뇌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이런 정세 변화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지난 22일 아프가니스탄·아랍에미리트(UAE)·소말리아·레바논에 대한 파병연장동의안을 연달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아프간 오쉬노부대, 아랍에미리트 아크부대, 소말리아 청해부대, 레바논 동명부대의 파병기간이 2013년 말일까지로 연장되고, 국민 세금 659억원이 쓰일 예정이다.
4개 지역에 대한 파병연장동의안이 하루에 통과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군부대 파병은 한 나라의 중차대한 외교적 행위다. 그 지역 상황과 파병 군대가 실행할 구체적 임무, 위험과 대책이 충분히 논의·검토돼야 한다. 그러나 국회는 국민적 합의나 청문회, 토론회 한 번 거치지 않고, 하루 만에 4건의 파병연장동의안을 졸속으로 결정했다.
정부는 파병 연장의 명분으로 국익창출, 국위선양, 평화유지 노력을 들고 있다. 하지만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국회에 제출한 파병연장동의안에는 핵심적인 사실이 빠져 있다. 첫째, 올해만 해도 아프간의 오쉬노부대는 현지 무장단체한테서 21번 피격을 당했다. 주요 파병국가들조차 조기 철군을 연이어 발표하는데, 정부는 어떤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파병연장안을 통과시켰다.
둘째, 아랍에미리트 파병은 원전 수주의 대가로 이뤄진 ‘비즈니스 파병’이다. 하지만 동의안에는 이 내용이 명확히 기재돼 있지 않다. 또한 이 지역 아크부대로부터 훈련받은 아랍에미리트 현지 군인들은 이웃국가인 바레인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던 시민들을 진압하기까지 했다.
셋째, 소말리아 해역에서 20여개국 해군이 작전을 수행한 이후에도 2011년을 제외하면, 오히려 해적피해 사례는 증가했다.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적을 사살한 ‘아덴만 작전’ 이후, 해적의 보복으로 한국 선박이 피랍돼 500여일째 억류돼 있는 게 대표적 사례다. 또 소말리아에 해적이 급증한 이유는 소말리아에 파병한 국가들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 미국의 소말리아 군사개입 이후, 당시 정부는 붕괴됐고 연이어 내전이 벌어졌다. 이 틈을 타 유럽국가들은 핵폐기물 등 각종폐기물을 불법으로 버렸고, 다국적 기업은 불법조업을 벌였다. 이래서 망가진 바다 생태계에서 먹고살기 힘들게 된 소말리아 어민들은 고깃배를 버리고 총을 들었다.
넷째, 레바논에 파병된 동명부대는 ‘유엔(UN) 평화유지군’이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한국군이 속한 ‘국제연합 레바논 평화유지군’(UNIFIL)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다. 평화유지군의 실제 목적이 이스라엘과 미국에 저항해 레바논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합법정당 ‘헤즈볼라’의 무장해제를 위한 전투병 파병이라는 시각이다. 국회가 이런 사실을 알고도 파병연장동의안을 통과시켰다면,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기본의무를 저버린 중대 과실이다. 정부의 불의한 파병 앞에 거수기 역할만 하는 국회는 이미 국회가 아니다.
이번 파병연장동의안으로 한국군이 1년 더 주둔하게 될 이들 지역은 모두 미국의 석유패권을 위한 핵심요충지들이다. 정부와 국회는 이미 저물어가는 미국 패권이익에 기대어 또다시 이득을 보려는가. 한국은 이미 지난 11년간 ‘국익’을 명분으로 불의한 파병을 강행해왔다. 또 전세계 어디든 전투병 파병을 가능케 하는 ‘유엔평화유지활동(PKO)법’이 제정됐고, 정부는 2020년까지 세계 7대 무기 수출국이 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차근차근 밟아온 전쟁국가의 길에서 한국은 15억 중동 이슬람 민심과는 멀어지고 있으며, 젊은 장병들은 표적공격을 당하고 있다. 우리는 거짓국익을 위해 인간성을 팔아넘기는 나라, 국민들을 위태롭게 만드는 나라의 국민이길 거부한다. 총을 든 평화는 없다.
김재현 나눔문화 사회행동팀장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광고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