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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아리랑 등재, 그 이후가 문제다 / 김연갑 |
지난 6월에 신청한 아리랑이 드디어 유네스코 세계인류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아리랑이 인류문화유산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로써 아리랑은 그 가치를 세계인들과 공유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그래서 관련 지방자치단체와 유관단체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이는 2001년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14종을 등재하는 동안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왜 그럴까? 특별히 아리랑만이 갖고 있는 가치와 내세울 만한 그 무엇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올림픽 개최권을 딴 것만큼이나 치열한 경쟁을 뚫고서 등재되었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지난 5월 중국이 아리랑(阿里郞)을 자국의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것을 두고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사전 조처라는 우려를 했던 것인데, 유네스코 등재만은 우리가 선점했다는 안도감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번 등재가 안도하고 자축할 만큼 의미가 큰 것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번 등재가 아리랑의 가치를 세계화하기 위해, 또는 아리랑을 부르는 이들에게 자긍심을 주기 위해 우리 스스로가 신청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지정에 따른 반작용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에서다. 또한 아리랑을 부르지 못하는 99.84%의 이민족과 0.016%의 조선족과 아리랑을 공유해야 한다는 억지 논리에 의한 지정을 상쇄하거나 무력화시킬 만큼 효과나 의미가 크지도 않다는 데 있다.
우선 교류의 어려움을 이유로 북한과 공조 없이 단독 신청하여 등재했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올해 신청을 하더라도 절차상 등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이번에 신청을 한 것은 북과 공조하여 공동 등재를 할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1989년 남북 단일팀 단가로 ‘아리랑’을 쓰기로 합의하고 서로 기뻐했던 사실을 상기하면 분명 ‘아리랑의 분단’이 아닐 수 없다.
아리랑을 ‘민족의 노래’로 규정한 것은 1961년 ‘국토통일학생총연맹’이 북한 학생들과 만남이 무산되자 “남북이 하루 한시에 함께 통일을 염원하며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부르자”는 제안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하면서부터다. 이는 앞당긴 ‘아리랑의 통일’이었으니, 이후 아리랑은 남북간의 민족 동질성의 분명한 인자라는 사실을 깨우쳐 준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아리랑을 동북공정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중국과 공유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음은 물론 남북간에도 분단을 맞게 된 처지가 된 것이다. 이는 앞으로 중국과 갈등의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남북교류에도 장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둘째는 이미 우리가 10여년 동안 14종을 등재하여 온 사실에서 확인된 바이지만, 어떤 종목의 등재에서도 유네스코의 혜택을 받은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니 국민 대다수는 어느 유산이 언제 어떤 평가로 등재되었는지조차 모르는 실정이다. 결국 유네스코는 심의·등재 권한만 행사할 뿐이지 지정에 따른 어떤 혜택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어쩌면 우리가 아리랑의 인류문화유산적 가치를 입증하고, 이를 세계인과 공유해야 하는 의무만을 갖게 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이어서, 이제는 그 의무만이라도 충실히 하는 것이 그나마 아리랑의 세계화로 우리 스스로 자긍심을 찾는 순기능일 것이다. 곧 아리랑 등재 이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우선 북한과의 교류이다. 빨리 만나 저간의 사정을 나누고 신청 요건을 구비·보완하여 유네스코에 공동 등재를 요청해야 한다. 다음은 우리가 그토록 아리랑을 오랫동안 불러오는 이유는 여기에 저항·대동·상생의 정신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려 이 세가지 정신을 인류 보편가치로 확산시키는 일이다. 마지막은 2001년 우리나라가 지원하여 제정하고 유네스코가 시행하다 2007년 제3차 시상을 끝으로 폐지한 ‘아리랑상’(Arirang Prize)을 복원하는 일이다. 이 상을 폐지하지 않았다면 중국에도 영향을 줄 수 있었을 것이고, 지속적으로 아리랑을 비롯한 우리의 무형문화유산 가치를 세계에 알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축보다는 이 세가지를 실천해야 할 의무감을 무겁게 안아야 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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