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17 19:23
수정 : 2012.12.17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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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서울특별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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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자녀를 둔 부모와 가정은 요즈음 심각한 유치원 대란을 겪고 있다. ‘추첨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유치원마다 부모들의 아우성이 들려오고 있다.
유치원 추첨 대란은 정부가 준비 없이 무책임하게 ‘누리과정 사업’을 확대한 것도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올해에는 만 5살 아동만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누리과정 사업이 내년부터는 만 3~5살로 확대된다. 유치원에 보내려는 수요는 급증하는 반면 유치원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유치원 추첨 대란은 결국 누리과정의 수요와 공급을 예측하지 못한 중앙정부의 헛발질 때문에 일어났다. 이제 유치원뿐 아니라 국공립 어린이집 등도 추첨대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자칫 나라 전체가 보육대란에 빠질 위기에 있다.
중앙정부의 헛발질은 또 있다. 누리과정 사업 관련 예산을 무작정 지방에 떠넘기는 것이다. 서울시의 경우, 내년도 누리과정 사업에 필요한 예산은 4600억원으로 올해보다 2573억원이 늘어난다. 그런데 이 예산을 지방에서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교육청은 화장실 개선 등 8개 사업에는 예산을 반영하지 못했고, 낡은 교실을 고치는 데 필요한 예산을 깎아 누리과정 사업에 충당해야 한다. 아랫돌 빼어 윗돌 괴는 격이다. 한파가 몰아치는 요즘 교실의 온도는 6도밖에 되지 않는다.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낡은 교실 창틀 개선사업을 포기하고 누리과정 사업에만 예산을 쓰라고 하는 건 올바른 정책이 아닐 것이다.
현재 전국의 광역시·도의회는 누리과정 관련 예산을 전액 또는 부분 삭감하거나 심의를 보류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싸고 중앙과 지방이 서로 책임을 떠넘긴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지방은 누리과정 사업을 책임질 수 있는 재정적 여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예산이 넉넉하다면 유권자에게 환영받을 좋은 사업을 왜 추진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방의 곳간은 점점 비어가는데 누리과정을 어떻게 추진할 수 있겠는가.
누리과정 사업 예산을 둘러싼 최근의 갈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중심에는 재정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중앙정부가 지방으로 사업을 이양할 때는 반드시 관련 예산을 함께 넘겨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중앙정부가 각종 사업의 지방 이양을 추진하고 있지만 사업만 넘길 뿐 관련 예산은 넘기지 않는 것이 태반이다. 특히 지방의 열악한 재정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 바로 ‘매칭사업’이다. 누리과정 사업 역시 대표적인 매칭사업이다. 매칭사업을 추진할 경우, 관련 사업의 예산을 중앙정부와 지방이 나누어 부담해야 하는데, 충분한 예산지원이 없는 탓에 각 지방의 재정 상태는 오히려 나날이 악화되어 가고 있다. 심지어 지역 공무원의 월급조차 제대로 줄 수 없을 정도로 예산이 부족한 지방자치단체도 적지 않다. 지방자치는 그야말로 허울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가 기형적인 이유는 국세와 지방세의 불합리한 비중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재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은 8 대 2로 중앙 집중적인 구조다. 오죽하면 지난 11월20일 전국의 지방의원 3000여명이 의사일정을 전면 중단하고 서울에 모여 대통령 후보들에게 지방자치를 살려내라며 실력행사까지 했겠는가.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지방자치는 여전히 반쪽인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8 대 2라는 국세와 지방세의 불균형을 해소해야만 할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지방자치는 온전하게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곧 새 대통령이 탄생한다. 새 대통령에게 지방분권과 자치에 대해 적극적이고 과감한 정책의 실시를 당부하고 싶다. 현재 대한민국의 지방은 산소호흡기로 연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방을 살려내고 진정한 자치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더 나은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고, 각 지방이 골고루 잘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지방분권과 자치가 제대로 되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지방분권형 선진국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김명수 서울특별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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