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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2.24 19:21 수정 : 2012.12.24 19:21

직선제 이후 첫 과반 득표. 박근혜 당선인에게 붙는 수식어다.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축하하는 마음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숫자로 표현되는 득표수와 득표율이 높은 만큼, 거기에 포함되지 않은 유권자들의 상심이 깊어 보이기 때문이다. 선거에 당선자와 낙선자가 있듯이, 지지자들의 환희와 실망이 갈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낙선한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이 겪은 낙담의 깊이로 말하자면, 이번 선거는 1987년 대선 이후 가장 심각한 사례로 보인다. 박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은 시민들 중 상당수는 이번 선거 결과를 단순히 실망이나 안타까움이 아니라 일종의 상처로 받아들이는 것 같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그 이유는 ‘새누리당의 재집권’에 있지 않고 ‘박근혜의 당선’에 있다. 당선인이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당선 인사를 하던 그날 밤, 그에 못지않게 많은 이들은 비참함과 굴욕감 같은 극단적인 감정을 토로했다. 이는 단순히 낙선한 후보에게 그들이 바쳤던 지지의 열광으로도, 새누리당 노선에 대한 그들의 강렬한 정치적 반감으로도 온전히 설명될 수 없다. 그들에게 이번 선거는 통상적인 정치적 행위를 넘어 일종의 규범적 사건이었던 것이다.

민주공화국의 헌정질서를 중단시키고 등장하여 권력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고문·살해하며 18년간 군림했던 독재자의 딸이 자유선거에 의해 다시 그 공화국의 수반으로, 국가원수로 선출된다는 사실, 그것은 외국 시사 주간지의 눈에 정치적 분석을 요하는 흥미로운 아이러니로 비칠지 모르지만, 이 나라의 많은 민주주의자들에게는 윤리적·실존적 해석을 요하는 부조리극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독재자의 딸이라고 해서 대통령이 될 자격을 갖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도 태어날 때 제 부모를 선택하지 못한다. 독재자의 딸을 독재자라고 비난해선 안 된다. 문제는 피해자들의 존재다.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데 과거의 이야기를 또 끄집어낸다고 경기 섞인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는 허공의 미래가 아니라 과거의 미래일 뿐이라는 가르침을 반복할 시간은 없다.

한가지만 분명히 말하자. 피해자 가족들의 기억과 고통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과반수의 동료 시민이 유신의 영애를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해주던 날 밤, 유신의 대통령에 의해 아버지와 지아비를 잃은 가족들이 받았을 그 야수의 고통을 나는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그날 밤 ‘역사의 퇴보’에 낙담했던 반대자들의 한탄을 다 모은들, 피해자 가족의 침묵하는 상처를 가늠할 수 있을까.

국민대통합, 박 당선인의 당선 인사다. 나는 그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으며 그의 선의가 실현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다만 나는 그가 통합의 순서와 방법을 이해하고 있기를 바란다. 자신과 멀리 있는 사람들, 자신의 당선을 기뻐하며 축하해주기보다는 말없이 등을 돌리려는 사람들을 먼저 찾아가는 것이 통합의 순리다.

나는 박 당선인이 하재완과 도예종의 가족을, 장준하의 가족을 가장 먼저 찾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손 내밀고 말하길 바란다. “내가 대통령이 되어 미안하다”고. 설령 그들을 제외한 99퍼센트의 국민이 지지해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그는 그렇게 말해야 한다. 오직 그렇게 말함으로써 그는 100퍼센트의 대통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00퍼센트의 맨 바깥쪽에 있는 상처를 다독이는 당선인의 진심과 용기를 느낄 때, 현실의 48퍼센트는 당선인의 이름을 더 이상 ‘독재자의 딸’이 아니라 ‘박근혜’로 기억하기 시작할 것이다.

김율 대구가톨릭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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