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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영리병원 확대를 우려한다 / 고유진 |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우리 헌법 제36조 제3항엔 이렇게 돼 있다. 헌법대로 되려면 의료서비스 제공과 의료비 부담을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하는 가운데 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이를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시장경제에 맡긴다면, 의료비를 지급할 능력이 없는 가난한 서민들은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된다. 또 도시보다 의료수요가 적은 농어촌 지역은 양질의 의료공급이 어려워, 지역 간 의료서비스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국내에서 병원 설립은 비영리법인만 인정해왔으나, 지난 10월29일 보건복지부가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 의료기관의 개설허가 절차 등에 관한 규칙’을 관보에 게재하면서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이 가능해졌다.
전국의 경제자유구역은 광역시 3곳, 시 이하 지방자치단체 13곳으로, 이번 조처는 곧 국내 영리병원 허용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더욱이 내국인 진료가 100% 가능하기 때문에 이번 허가만으로도 소득에 따른 의료서비스의 질적 차이가 심화될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다.
현재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있는 프랑스·독일·네덜란드 등에 견줘 우리나라의 공공의료시설 비율은 현저히 낮다. 이미 보건의료비 지출 대비 공공지출 비율은 54%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73%에 훨씬 못 미치는 상태다. 게다가 환자가 병원에 내는 전체 의료비 가운데 본인 부담 비율이 43.6%에 이르고, 이 중 진료비의 60%가 건강보험 혜택을 볼 수 없는 비급여 진료비로 병원에서 환자들의 사적 부담을 얼마든지 늘릴 수 있는 구조다.
대형 병원뿐만 아니라 한국 병원의 대다수(약 57%)를 차지하는 개인 병원이 영리법인으로 전환할 경우 법인세는 개인사업자로 내는 소득세에 비해 10% 정도 낮아진다. 즉 개인병원도 영리병원으로 전환하는 것이 훨씬 유리한데, 2009년 작성된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도입 필요성 연구’라는 보고서에 의하면 이들 중 20% 정도만 영리병원으로 전환해도 국민의료비가 약 1조5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게다가 영리병원 도입시 추가로 필요한 의료 인력은 비영리병원으로부터의 이동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의료인력 취약지역의 의료서비스는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영리병원의 최대 수혜자는 누구인가. 바로 보험업계와 병원업계, 그리고 이 두가지 사업을 모두 갖춘 거대 재벌들이다. 보험업계는 국민의 민간보험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데, 국민건강보험의 적용 대상에서 벗어나는 영리병원은 민간보험 의존도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업계는 그동안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얻은 수익을 외부로 유출할 수 없었으나 영리법인으로 전환하면 수익을 외부로 가져가는 것은 물론 주식 발행도 가능하다.
아직 국내 영리병원 도입이 허가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의료기관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 있는 상황에서 일부 지역에라도 영리병원을 허가한다면, 의료서비스가 공공재의 역할을 상실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진료비 지급 방식도 ‘행위별 수가제’(free-for-service)로 환자에게 꼭 필요하지 않아도 진료 행위를 많이 하면 할수록 더 많은 돈을 벌수 있는 구조다. 이는 이윤추구의 극대화가 사실상 가능한 영리병원의 경우, 지급 능력이 충분한 환자일 때 과잉진료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국내 첫 영리병원이 될 송도지구의 국제병원 설립은 현재 일단 중지된 상태이나, 영리병원 확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 허가’에 국가 차원의 대책이 절실하다. 점차 생활 전반의 공공 분야가 시장경제화되고 있는 가운데 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인 대상 영리병원 설립허가를 철회할 수 없다면 전국적으로 영리병원이 확산되기 전에 취약한 공공의료서비스의 확충과 건강보험의 적용범위 증대 및 보장 정도를 강화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의료서비스도 미국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고유진 중앙대 생명과학부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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