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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께 / 박병우 |
보통 자연에 의한 재앙은 그 피해의 책임 소재를 묻기 어렵습니다. 그저 하늘만 원망할 수밖에요. 그런데 쌍용차의 비극은 자연 재앙이 아닙니다. 누군가에 의해 기획됐고, 그 과정에 총체적 불법과 비리가 담겨 있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국가 역시 그 과정에 다양한 형태로 적극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그 가해 책임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를 부인했습니다. 오히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결국 국정조사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었고, 새누리당도 이에 동의해 지난해 12월4일 국정조사 실시를 새누리당 명의로 약속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한구 원내대표가 지난 10일 무급휴직자 복귀 소식이 나오자마자 국정조사 무용론을 대놓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주는 참 잔인한 시간이었습니다. 4년 전, 누군가에게 떠밀려 안전장치 하나 없이 수십미터 공중 외줄타기에 내몰렸던 해고자와 가족들이 잠시 걸터앉아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희망의 줄, 생명의 줄이 다시 한번 널을 뛴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어?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누군가가 우리를 떠민 거라며? 나도 봤는데, 청문회에서.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 진상이 밝혀질 희망은 애초에 없었던 거야? 우리는 결국 빨갱이에 폭도였던 거야?
이한구 원내대표께 묻습니다! 그리고 당부합니다. ‘불구대천’이라는 말을 아시지요? 얼마 전 이 대표께서 공장 방문을 마치고 예고 없이 철탑농성장을 방문해 ‘왜 이러고들 사느냐’고 핀잔을 주고 떠난 순간부터 그 단어가 자꾸 생각납니다. 철탑 쪽은 단 한 번도 올려다보지 않으셨다지요. 그날 이후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갈 수 없다는 그 단어가 자꾸 떠오릅니다.
혹시 대표님은 해고자들을 불구대천의 적으로 규정하고 계신 것 아닌가요? 제 표현이 험하다고 서운하게 생각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제 눈에는 지난해 봄 저와 같은 동네 아파트 23층에서 몸을 던진 젊디젊은 해고자의 굽은 등이 자꾸 어른거립니다. 그리고 수많은 해고자와 그 가족들이 어둠 속에서 퀭한 눈으로 대표님의 그 입만 쳐다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말이 그리 곱게 나오질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국회 한구석에 먼지를 덮어쓰고 있을 국정조사 요구서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몇 장 되지도 않지만 전부가 어려우면 첫 장에 적힌 국정조사의 목적이라도 훑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무급자 복귀가 국정조사와 서로 맞바꿀만한 사안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아시게 될 겁니다. 서로 등가교환이 불가능한 사안이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제발 이제 와서 한 가닥 남은 희망의 줄을 흔들어대지 마십시오. 대표님 말고도 그 한 가닥의 줄조차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재앙에 직간접으로 손을 담근 자들이나, 여전히 해고자들을 불구대천의 폭도라 부르는 자들이겠지요. 대선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과 같은 자리에 냉큼 올라서서 줄을 흔들어대는 것은 새롭게 탄생한 민생 정부의 원내대표가 할 일이 아닙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나만 더 짚어보겠습니다. 혹 이 사안을 ‘지록위마’, 즉 ‘새 정권 군기 잡기’ 차원에서 벌이신 일이라면, 이 사안 말고 다른 건을 찾아보실 것을 간곡히 권합니다. 정말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새 정권 내부에서 굳이 대표님의 권위를 확인해야 한다면 이 사안 말고도 많이 있지 않을까요?
부디 앞으로 이 대표님을 생각하면 ‘불구대천’이나 ‘지록위마’가 아니라 ‘민생 정부’라는 단어가 떠오르게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박병우 민주노총 대외협력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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