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23 19:26
수정 : 2013.01.23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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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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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조직 개편 중에서 식품의 안전성 관리체계 개편 논의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여러 조사에서 우리나라 국민은 재해나 전쟁보다 식품 안전성 문제에 더 관심이 있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발표된 인수위원회의 안은 매우 실망스럽다.
물론 인수위가 총리 직속의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두고 식품의 안전성 관리기능을 강화하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은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식품 안전성 문제가 단순히 규제와 감시기능을 강화하면 해결된다고 오해한 것으로 보여 실망스럽다.
안전한 식품(food)이 소비자에게 공급되려면 그 식품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모든 방식에서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안전성은 단순한 감시의 문제가 아니라 이른바 푸드 체인(food chain), 즉 농장 및 바다로부터 식탁까지의 과정에 관여하는 산업 자체의 문제다. 가령 정부가 유통의 어떤 단계에서 전수 조사해 안전하지 않은 식품을 철저히 폐기한다면 일단 소비자에게 그런 식품이 전달되는 것은 차단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푸드 체인의 어느 단계에서 왜 그런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밝혀 해결법을 제시하지 못하면, 그런 식품이 시장에 다시 나타나고 폐기되는 과정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가령, 잘못된 농약 때문이라면 해당 농약 생산을 규제해야 하고, 농가가 농약을 잘못 사용한 탓이라면 재배과정을 개선해야 한다. 유통 과정에서의 문제라면 유통 과정을 개선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염원을 감시하는 것으로 목적이 달성되는 환경 문제와도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소비자에게는 식품의 안전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적정한 가격에 원활하게 공급되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따라서 생산·가공·유통의 모든 과정이 안전성을 담보하되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식품의 안전성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조건이다. 결국, 식품의 안전성 문제는 단순한 규제와 감시의 차원을 넘어 푸드 체인 상의 모든 산업 자체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식품 안전성 관리와 산업정책을 분리할 수 없다는 얘기다.
더 나아가 식품의 안전성 문제는 단순히 안전한가 여부를 묻는 과학의 문제를 넘어, 소비자가 안전하다고 믿는 심리와 인식이 중요하다. 따라서 식품의 안전성 문제는 생산하는 사람, 유통하는 사람, 소비자, 그리고 정부 사이에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더더욱 안전성 관리와 산업문제를 분리해 접근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소비자에게 안전한 식품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푸드 체인 전 과정을 일관성 있게 관리하여야 한다는 데 세계적으로 합의(컨센서스)가 이뤄진 상태다. 따라서 광우병 사태 이후 거의 모든 선진국은 각종 물질과 미생물의 위험성을 평가하는 기능은 행정부서로부터 독립된 과학자 조직이 담당하도록 했고, 그런 평가를 기초로 안전성을 현장에서 관리하고 소통하는 기능은 농축수산물 및 그 가공품의 생산과 유통을 담당하는 조직이 통합 관리하는 체제로 전환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화학물질 및 미생물의 위험성을 과학적으로 평가하여 기본적인 규제의 기준을 설정하고, 농축수산업 부서가 식품이 그런 기준에 맞게 실제로 안전하게 생산 유통되도록 관리하고 소통하는 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농축수산업 담당부서가 해당 산업의 이익을 챙기는 부서라는 낡은 인식에서 벗어나야 함은 물론이다.
이정환 GS&J인스티튜트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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