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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1.28 19:39 수정 : 2013.01.28 19:39

국내 최대 재벌가 3세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아들이 영훈국제중학교 사회적배려대상자전형을 악용해 편법으로 합격한 것이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이재용 부회장은 초등학교는 경기초등학교라는 유명 사립학교를 나왔지만, 중·고등학교는 청운중학교와 경복고등학교라는 일반 학교를 다녔다. 이 부회장이 중·고교를 다녔던 1980년대 초반은 중·고교가 철저한 평준화 체계였다. 그래서 부모가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있더라도 최소한 중·고교는 평범한 일반 아이들과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했다.

나는 1988년에 이 부회장의 모교인 청운중학교에 초임 발령을 받아 1994년까지 근무를 했다. 청운중학교는 청와대 옆에 있고, 평창동과 구기동 고급 주택촌을 학군에 포함하고 있어 재벌들과 고위 권력층의 자녀들이 많이 다녔다. 이재용 부회장 외에도 고 박정희 대통령의 외아들 박지만씨,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의 아들·손자들도 이 학교를 다녔다. 물론 이 학교의 대다수 아이들은 학교 근처 청운동·효자동이나 세검정 지역 평범한 가정의 자제들이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는 아주 어려운 형편에 있는 아이들도 제법 있었다.

그런데 부유층·권력층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는 사립학교를 다니며 일정 생활수준 이상의 아이들만 보다가 중학교에서는 전혀 다른 생활수준에 있는 아이들을 접하며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학교 마치고 교문을 나서면 자신을 태우러 온 운전기사가 대기하고 있고, 저녁에는 아빠를 따라 나비넥타이를 매고 호화 만찬에 참여해 재벌 2세 대우를 받는데, 학교에 오면 전혀 그런 대우를 받을 수 없었다. 학급에서는 품성으로 아이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반장도 할 수 없었다. 선생님들도 그 아이들을 특별하게 대우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을 잘 견디지 못하고 적응에 실패해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떠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곧바로 일반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평범한 다른 친구들의 삶을 배우고 체화해갔다. 그래서 지금도 나를 만나면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곤 한다. “선생님, 제가 중학생 때 청운중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면 제가 우리 직원들의 생활을 어떻게 알겠으며, 또 관심이나 가졌겠습니까? 제가 비록 아버지 덕에 주제넘게 부를 누리고 있지만 제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마음속에는 늘 우리 사회의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이 친구들, 중학생 시절의 그 격의 없이 어울렸던 시간이 없으면 어떻게 지금까지 우정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한국 사회는 가파르게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부와 권력의 세습도 여러 통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들이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고민, 아픔, 눈물을 접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재벌, 갑부 혹은 권력층 자녀들이 가난하고 평범한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활과 아픔을 이해하고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시간은 평준화 체제에 있는 중고생 시기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평준화 체제가 거의 무너지면서 고등학교는 이러한 가능성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고, 유일하게 중학교만 이러한 교육적 가능성을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공정택 교육감 시절 수많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국제중학교를 허용함으로써 최후의 보루를 무너뜨려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이 사회적배려대상자전형을 활용해 귀족학교인 영훈국제중학교에 편법으로 입학하는 사례가 나온 것이다.

점점 더 심해지는 양극화, 부와 권력의 세습 흐름 가운데서 최소한 초·중·고 시기에 아이들이 부모가 가진 부와 권력의 유무에 관계없이 서로 어울려 서로를 이해하고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능력과 노력보다는 부모의 부와 권력 덕분에 다시 우리 사회의 최고위층에서 부와 권력을 누리고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더라도 가난하고 평범한 친구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들을 배려하는 행동과 결정들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정병오 좋은교사운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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