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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인사청문회 무용론에 공감은 하지만 / 정병길 |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에 대해 “사상 최악의 인사청문회”라며 “이제는 인사청문회 무용론까지 나오는 단계”라고 말했다. 인사청문회 무용론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누가 누구에게 할 소리인지 헷갈린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인사청문회에서 열심히 했지만 우리만으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아 안타깝다”, “구태의연한 모습이 남아 있더라도 빨리 새로운 모습을 보여 국민 신뢰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그의 발언이야말로 구태의연한 말이다.
언론에 드러난 이동흡 후보자의 행적과 태도를 보면 치졸하고 뻔뻔하기 그지없다. 이를 끝까지 옹호하느라 이 원내대표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벌써 권력의 단맛에 탐닉해 분별이 흐려진 것일까?
인사청문회란 무엇인가? 대통령이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 국회의 검증절차를 거치게 함으로써, 국회가 대통령을 견제하여 인사권 행사를 신중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고위 공직자로서 ‘적합한 업무 능력이나 인간적 자질’을 검증하는 것이다. 고위 공직자들은 일반인에 비해 다수 국민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의 업무 능력이나 인간적 자질은 최고 수준이 요구된다.
그러나 근래 인사청문회에서는 본래의 목적이나 취지를 찾기 어렵다. 먼저 후보자로 추천된 인사들을 보면 불법이나 비리로 얼룩진 인사들이 너무 많다. 또한 과거 행적이 치졸하고, 뻔뻔하게 버티기까지 한다. 세상에 흠결 없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어떻게 저런 인사가 여기까지 왔을까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툭하면 ‘모르는 일이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런 기억력으로 고위 공직을 맡아 대체 뭘 하겠다는 것인가?
다음은 검증자의 태도다. 고위 공직자로서의 ‘업무 능력이나 인간적 자질’ 검증은 뒷전이다. 여야 패싸움에 가깝다. ‘5·16은 헌정파괴 쿠데타냐 아니냐’, ‘천안함 사태는 누구의 소행으로 보느냐?’ 등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수준 이하의 질문을 하고도 핵심을 찔렀다고 으스대지는 않는지? 최고위 공직자를 검증하는 청문회라면, 세종대왕이나 이충무공의 애민·애국정신,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에 대한 견해 등을 물을 수도 있다. 법조인 관련 청문회라면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행적과 견주어 볼 수도 있다. 그러한 청문회라면 격조 높고 국민들이 신망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 애초부터 불법·비리로 얼룩진 인사를 추천하게 되면 끝까지 수준 낮은 검증이 될 수밖에 없다. ‘위장전입은 왜 했느냐?’, ‘군대는 왜 안 갔느냐?’, ‘왜 세금은 안 냈느냐?’, ‘공금 유용 아니냐’ 등 범죄 추궁성 질문이 한없이 이어지고, ‘결정적 하자는 없다’는 등의 응수로 국민들이 역겨워하는 청문회가 될 것이다. 물론 간혹 잘못 추천할 경우도 있다. 이때는 체면이나 고집보다는 빨리 차선책을 내놓는 길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최선의 길이다.
차제에 한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후보자에게 실정법 위반 혐의가 있으면 수사기관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청문회에서 낙마시킨 것으로 만족하고 미안해하는 것으로 끝내면 수준 낮은 청문회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청문회가 고위층 후보자의 불법·비리를 세탁하고 면제해 주는 자리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최근 현금 4만여원을 훔친 어느 50대 불우한 남성에게 1년6월의 징역형이 선고됐다. 법은 힘없는 자에게만 추상같이 적용되는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인사청문회 무용론에 깊이 공감한다. 그러나 다시 인사청문회의 목적과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먼저 고위 공직자로서 ‘국민을 위한 업무 능력이나 인간적 자질’을 갖춘 사람을 가려 신중히 추천해야 한다. 다음 내 편 네 편, 편 가르기 검증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해서 검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정병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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