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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 서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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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난 달 말, 청주의 서원대와 서울의 연세대가 각기 조선사회과학자협회의 초청을 받아 함께 ‘공화국’에 다녀왔다. 대학교 단위로는 첫 북행길이다. 한달 내내 비구름에 갇혔다던 백두산 마루에서 병풍 두르듯 치켜선 장군봉 향도봉 쌍무지개봉 천문봉 백운봉 등 화려한 위용과 이 연봉을 떠안고 있는 ‘하늘못’의 겸손한 웅좌가 남녘 나그네의 눈동자에서 하늘거릴 무렵, 정전되었다던 삭도에 전기가 들어와 천지로 내려갔다. 한민족 하나 하나의 님에 혼이 깃들인 ‘하늘못’, 하맑은 물이 하늘되어 칼새도 곤두박질 친다는 ‘하늘못’가에 맨발을 대는 순간, 한라산 끝자락 해안가의 땡볕 속 용천수가 찰나 반전하는 그 서늘한 상쾌함이 일었다. 갓 잡은 산천어에 방금 떡메 친 인절미로 길게 펼쳐진 못가의 흐벅진 점심향연, 산천어 한점 씹으니 시골 텃밭의 무공해 오이다. 상큼한 이 여운 안주삼아 들쭉주를 주욱 부어 넣었다. 예가 남인가 북인가 머리 들어 하늬녘 백운봉 능선에 연변에서 오른 남녘인사들이 점점이 선으로 보인다. 또 평양고려호텔에서 만난 시인 지우가 이 얘기 듣고 누렇게 농익은 시샘을 피워냈다. 삼지면 배개봉초대소에서 보천보로 가는 길. 뽀얗게 먼지 일며 달리는 차창 너머 ‘살프슴(미소)’ 띠우며 맞잡은 손 놓지 않고 수줍어 돌아서는 연인 한쌍, 반갑게 꾸뻑 절하는 어린이들, 봄 수해에 끊어진 다리 잇느라 땀범벅이 된 건장한 얼굴들, 덜덜덜 서남쪽 46㎞가 어느새 압록강 지류인 보천보의 가림천이다. 빨래하는 아낙들, 낚시 드리운 할아버지, 꿰벗고 멱감는 아이들. 바로 이 강가에 1937년 6월 4일 0시 빨치산 90 여명과 내통한 국내 광복회 회원 80 여명이 숨어들었다. 지휘자는 김일성. 하루 낮 보내고 밤 10시 주력군이 주재소를 습격 점령하는 동안 별동대는 면사무소 우편소 요지를 접수하여 그날 밤 11시 만주 쪽 장백밀영으로 철수하였다. 이들 뒤에는 조선광복회 십대강령, 일본군에 복무하는 조선병사에게 고함, 반일대중에게 보내는 글 등 수 백장의 ‘삐라’가 1300 여 주민을 꿈인가 생시인가 환희의 충격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당시 동아일보가 정간의 위험을 또 무릅쓰고 연일 보도하면서 연전에 손기정의 세계제패에 이은 쾌보를 터뜨렸다. 이리하여 김일성의 이름은 일제의 심장부를 강타하면서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이즈음 이승만은 조선 독립의 운명을 미국의 외교노선에 맡기고 있었다. 폐회 날 평양인민문화궁전에서는 박수소리가 유난히 생기를 띠고 있었다.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로 찍힌 <직지>(直指:담박에 마음의 본질을 꿰뚫는다는 불교 용어)의 진본 찾기를 북한에서도 결행하겠다는 최상순 북측단장님의 약속 때문이었다. 1234년 강화도에서 <상정예문>(詳定禮文)을 찍은 금속활자가 세계최초이고,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 지금까지 발견된 금속활자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임은 널리 알려진 터. 더불어 이것이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본 <42행 성서>보다 78년 빠르다는 것도. 마침내 2001년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국으로 공인 받은 것이다. 이리하여 청주는 세계가 부러워 하는 문화도시가 되었다. 금속활자를 만들고 인쇄한 흥덕사 터에 청주 고인쇄박물관이 설립되어 서양인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고 직지관련 각종 행사가 매년 개최되어 청주는 가히 직지의 도시로 상징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진본은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이 흠이다. 따라서 어딘가에 숨어 있을 직지의 다른 진본들을 찾기에 청주시와 충북이 애태우고 있을 요즈음 평양인민문화궁전에서 직지 학술모임이 열린 것이다. 성기서 서원대 교수의 ‘직지의 불교해설’, 서원대 연구원 남윤성 피디(PD)의 ‘직지의 인류문화적 의미’, 직지포럼대표 강태재의 ‘남북함께 직지찾기’ 논문발표는 북녘학자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특히 김일성 대학 김유철 교수의 해박한 지식은 남녘학자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학술모임 정례화 약속에 이은 북녘의 직지 찾기 동참 발언에 서원대 총장 손문호, 함께 온 청주시장 한대수의 얼굴은 웃음꽃이 만발했다. 남북이 하나 된 흥분 속에 북녘친구가 내게 한 말, “보천보 전투 때 습격하듯 직지를 찾아 내갔시오.”남북이 한마음이 되어 직지찾기에 나선다면 진본을 찾는 것은 시간문제이리라는 기대감이 부푸는 순간이었다. 김정기/서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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