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13 19:32
수정 : 2013.02.14 11:09
기고
노회찬이 오늘 대법원 법정에 선다. 홍석현과 이학수가 16년 전 검사들 떡값 주기를 기획하던 대화의 안기부 도청 내용을 공개하여 두 사람의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한 책임을 2013년 현재 노회찬에게 지우려는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3월 불법감청 내용이라고 할지라도 “통신 또는 대화의 내용을 공개하지 아니하면 공중의 생명·신체·재산·기타 공익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한 경우” 공개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노회찬의 떡값검사 명단 공개는 “타 언론매체를 통해 사건의 전모가 이미 보도되었고 감청된 대화가 이루어진 8년 후에 이루어진 것”이라서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며 항소심의 무죄 판결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였다. 오늘은 파기환송심의 유죄 판결이 다시 올라온 것으로 대법원이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면 다시 유죄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홍-이 대화가 이루어진 지 8년이 흘렀다고 하여 대화 내용을 공개할 사회적 필요성이 줄어들었다니 참으로 반역사적인 생각이다. 미래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책임자들이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과 검찰의 유착 관계에 대한 평가 내지 사회적 여론은 피상적인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고, 비리 근절 노력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국민이 책임자들을 알아내어 이들이 재직할 당시 해당 기업에 대해 유리하게 기소하였는지 등을 국민들이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회정의를 위해 긴절한 시대적 요청이었다. 대법원은 “비리는 시간만 흐르면 더 이상 공익적 공개가 불가능하다”는, 법이 아닌 신화를 쓰려는 것인가. 대기업-검찰 유착과 같은 권력비리는 도청 등 특단의 상황이 아니라면 드러날 수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권력비리의 공익적 공개를 실질적으로 봉쇄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대법원의 말대로 ‘이미 언론매체를 통해 전모가 공개되었다’면, 노회찬의 추가적인 공개는 더욱 비난하기 어렵다. 그런데 대법원은 거꾸로 ‘거의 다 공개되었는데 굳이 자세한 대화 내용을 공개해 관련자에게 피해를 주었다’며 비난한다. 통신비밀보호법은 통신 또는 대화를 하는 자들의 통신 또는 대화의 비밀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대화에 등장하는 제3자, 즉 떡값검사들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8년 전에 나눈 대화의 골자가 대부분 공개된 상황에서 자세한 대화 내용이 추가 공개된다고 하여 홍-이에게 국민의 귀를 막아야 할 정도의 큰 피해는 없었다.
대법원은 ‘떡값검사의 실명까지 공개한 것’도 과도하다며 문제를 삼고 있다. 그런데 떡값검사들의 실명은 애당초 홍-이의 대화에 나오지도 않는다. 실명은 이들의 대화 내용과 외부 사실들을 조합하여 유추된 것일 뿐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감청 내용의 공개에 적용되는 것이지 그로부터 유추된 지식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또 어차피 통비법은 위에서 말했듯 통신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법이지 통신 내용에 등장하는 제3자를 보호하는 법률이 아니다. 즉 검사 실명 공개와 노회찬의 통비법 위반 여부는 하등 관계가 없다. 결국 대법원은 이 재판이 이학수-홍석현의 대화의 비밀에 대한 재판이 아니라 검사들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한 재판임을 자인한 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것은 대법원이 노회찬이 기자회견에서 말과 글로 공개한 것은 면책특권을 인정해주고는 인터넷에 올린 것만을 문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오프라인에서 무죄인데 온라인에서는 유죄가 되는 것도 구시대적이지만, 이렇게 거대한 권력비리에 대해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무시한, 정의의 사도라고 해야 할 대법원으로부터 기대하기 어려운 매우 안이한 정의관의 발로이다.
박경신/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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