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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2.25 19:28 수정 : 2013.02.25 19:28

작년 3월7일을 기억한다. ‘구럼비 발파’가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며 사방에서 터져 나오던 탄식들. “생명을 생명 그대로 살게 하라. 아름다움을 아름다움 그대로 보존하라. 말뿐인 ‘평화의 섬’이 아니라 진정한 ‘평화의 섬’이 되게 하라. 전쟁기지가 아닌 평화의 삶터를!” 그 안타까운 외침들의 기원에는 세상의 모든 숨 탄 것들이 서로서로 연결된 존재들이라는 호혜적 생명의 감각이 있다. 생명에 대한 곡진한 경외와 평화를 위해 드리는 눈물겨운 기도의 대장정을 강정에서 본다. 누군가 지쳐 떠나면 그 자리에서 누군가 다시 기도를 이어간다. 세상에,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삶터에서 그저 평화롭게 살기 위해 7년을 매일같이 싸워야 하다니!

이 여리고도 끈질긴 평화의 대장정에 한국의 작가들 400여명이 함께한다. 작년 11월21일, 강정마을 전체를 ‘평화의 도서관’으로 만들자는 제안에 260명의 작가들이 서명을 하고 24명의 작가들이 직접 강정마을로 가서 주민들과 만났다.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난 지금, 이 제안의 구체적인 첫발을 떼려 한다.

토목건설적 사고에 익숙한 우리 사회에서 도서관을 만든다고 하면 으레 건물을 짓고 책을 비치하는 관습적 사유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가 꿈꾸는 것은 도서관 건물 하나를 짓고 거기에 책을 채운 후 ‘도서관’이라는 명패를 다는 것이 아니다. 강정마을 전체를 살아있는 커다란 도서관으로 만드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평화의 도서관. 이런 내용을 오해 없이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서 ‘강정평화 책마을’이라는 명칭이 좀더 적합하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원로문인부터 이십대 청년문인까지 260명으로 출발한 이 일에 연명한 작가들은 그동안 400여명이 되었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한 나라의 시인·소설가들 400여명이 제주의 한 작은 마을에 보낼 책을 몇 박스씩 포장하고, 후원금을 보내고, 출간된 책을 포함해 향후 출간될 자신의 모든 책을 기증할 것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강연·낭독회 등에 재능기부를 약속하는 이 모든 일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종의 미학적 사건이다. 이것은 주민 동의 없는 반민주적 방식으로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협할 화약고가 될 전쟁기지를 짓는 야만에 대해 가장 문화적인 방식으로 벌이는 저항의 축제이다. 바다환경을 오염시키고 천혜의 자연조건을 훼손하며 벌이는 생태적 학살에 대해 마지막 순간까지 생명의 감각을 지키겠다는 예술가 선언이기도 하다.

강정평화 책마을. 이것은 최소한 십 년은 걸릴 꿈이다. 돌담, 대문, 빈방, 공터, 정자, 공원, 당산나무, 우물가…, 마을의 곳곳이 다양한 형태의 서가와 열람실이 될 것이며, 강정마을을 찾는 외부인들은 마을 곳곳을 걸어 다니며 관심 분야의 책을 찾아 순례하는 책마을 올레의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다. 책마을을 산책하는 도중에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낭독회, 공연, 전시회, 워크숍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을 것이며, 책과 문화예술의 향유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책마을에서 다양한 워크숍을 열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이제 막 첫발을 떼는 우리들의 꿈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꿈꾸어준다면 꿈이 현실이 되는 날들이 조금씩 더 앞당겨질 것이다. 3월2일 서울에서 진행될 ‘강정평화 책마을 제안식’에 많은 시민이 함께해 주시길 바란다. 무기와 군함이 아니라 책으로! 전쟁이 아니라 평화로! 절박한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들이야말로 대통령을 뽑고 맥없이 청와대를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 아니겠는가.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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