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27 19:56
수정 : 2013.02.27 19:56
해고자 복직과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하며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송전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한 지 100일이 지났다. 해가 바뀌었고 대통령이 바뀌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문기주 정비지회장, 복기성 비정규직 수석부지회장, 한상균 전 지부장은 100일을 25미터 상공 두 평도 안 되는 천막 안에서 버텨왔다. 아래 상황은 좋지 않다. 새 대통령은 송전탑 쪽으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있다. 취임 연설에서 사회통합과 국민 행복 운운하는 새 대통령은 사회통합과 국민 행복의 리트머스 시험지인 쌍용차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지난 1월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송전탑을 찾았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노동자들을 만나 국정조사에 회의적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농성을 중단하는 게 현명한 처사라고 말하고 총총히 자리를 떴다. 그는 단 한 번도 송전탑 쪽으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한겨울 15만 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철탑 위에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살기 위해 싸우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눈이 가는 것이 인정이자 도리 아닌가?
그때 나는 확인했다. 해고 노동자는 집권 여당이 말하는 국민에서 제외된 존재다. 대한문에서, 여의도에서, 송전탑에서 일자리와 정의를 되찾아달라고 외치는 목소리는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소음에 불과하다. 가족과, 동료와,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울부짖는 이들을 향해 귀찮고 불쾌하다며 인상을 쓰는 얼굴을 상상해보라. 그것이 바로 집권 세력의 얼굴이다. 엄연한 국민을 국민이 아닌 존재로, 엄연한 인간을 비인간으로 취급하는 이들의 표정이다. 그러나 그 얼굴은 소위 ‘건전한’ 국민을 상대로 통합과 성장을 이야기할 때, 재빠르게 온화한 표정으로 바뀐다.
모멸스럽고 절망스런 이런 상황에서 송전탑의 노동자들은 어떻게 견디는가? 영웅적 의지로 견딜까? 맞다. 그들은 모든 배제된 자들의 영웅이다. 그러나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의지는 외로움 속에선 언젠가 꺾인다. 그들은 지상의 사람들과 연결돼 있다. 똑같은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동등한 인간으로 그들을 간절히 올려다보는 사람들과 연결돼 있다. 그 연결이 그들의 의지를 유지하고 키우는 양분이다.
그 연결은 무엇으로 가능한가? 사람들은 노동자들과 함께 국민과 사회통합과 행복에 대한 다른 서사를 만들어간다. 그 서사들은 끝없이 이어 붙인 거대한 퀼트 이불처럼 모진 시절을 견뎌내는 고공의 노동자들과 지상의 사람들을 함께 덮어주고 덥혀준다. 그 서사는 연약하고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다른 서사는 성장과 이윤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는 정부와 자본과 보수 언론의 빤한 서사와 비교할 때 훨씬 풍요롭고 아름답다.
나는 구정 때 사람들이 송전탑을 방문하여 농성자들과 새해 덕담과 먹을거리를 나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한 트위터에서 사람들은 ‘소리 연대’를 통해 전국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지지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들이 육성으로 읽는 시, 소설, 에세이 속에서 노동자들은 온갖 종류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사람들은 사랑하면서 싸우고, 울면서 웃고, 바보 같으면서 지혜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고공의 노동자들과 함께 나누며, 인간이란 얼마나 무한한 삶의 가능성을 가진 존재인가를 드러낸다. 소리 연대를 비롯한 다양한 연대를 통해 사람들은 노동자들과 이 비참한 세계를 함께 버티는 이야기와 노래의 공동체를 희미하게 그러나 끈기 있게 엮어가고 있다.
나는 오늘 밤 농성 100일째를 맞은 고공의 노동자들에게 시 한 편을 들려주려 한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너를 떠올린다는 것은/ 너에 대해 쓴다는 것은./ 감옥에 누워서 너를 생각하는 것은/ …너를 위해 또 나무로 조각을 해야지/ 서랍/ 반지/ 삼미터 정도 얇은 비단을 짜야지./ 그리고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창살을 부여잡고/ 자유의 새하얀 푸르름을 보고/ 너를 위해 쓴 것들을 큰 소리로 읽어야지”(나즘 히크메트 <피라예를 위해 쓴 저녁 9~10시의 시> 이난아 옮김)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누가 감옥 안에 있고 누가 감옥 밖에 있는가? 오늘은 문득 시를 읽는 내가 갇힌 자 같다. 농성 100일이 되는 오늘은 땅 위의 내가 죄인이자 수인이고 고공의 노동자들을 떠올리며 자유의 새하얀 푸르름을 발견하는 자 같다.
심보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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