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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04 19:26 수정 : 2013.03.04 19:26

지난 2월25일, 성균관대학교 졸업식장. 늦겨울 찬 바람에 앙상한 가지들이 몸을 떠는 날씨였지만,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은행나무만큼은 이미 봄을 맞은 듯했다. 수년 동안의 힘든 공부를 마치고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졸업생들의 눈에선 자신감이 넘쳐났다. 축사를 해주는 선배 연사들의 목소리에서도 강한 자부심이 묻어 나왔고, 졸업식장을 찾은 가족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에서도 뿌듯한 마음이 실려 나왔다. 이번 새 정부에서 다수의 요직 인사를 배출하며 한껏 고무되어 있는 동문들의 마음은, 이렇게 성균관 교정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어 놓는 듯했다.

나 역시 졸업생으로서 졸업식에 참여하게 되었다. 동문으로서 내각에 참여하게 된 선배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땐, 어찌나 가슴이 뛰던지! 한 사람, 한 사람 선배들의 이름을 들으며 존경 어린 마음과 피어오르는 열정에 가슴이 뜨거워졌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 뜨거움도 잠시. 내 가슴은 이내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으로 차갑게 식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최근 인사청문회를 통해 쏟아져 나온 후보자들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이, 내 들뜬 머리와 가슴속을 온통 헤집어놓았기 때문이다.

무릇 후배란, 학교에 대한 자부심과 선배들에 대한 존경심을 품고, 그들의 본을 받아 꿈을 꾸며 성장해가야 하는 존재들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후배의 한 사람으로서, ‘성시경 내각’이라는 말에 자부심이 아닌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면, 무슨 연유일까? ‘성대 출신들은 실력이 아닌 뭔가 구린 이유(연줄·탈법 등)로 출세한 것 같다’는 왜곡된 시선에 대해, 따끔한 맞불을 놓기는커녕 변변한 한마디 변명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은 우리 후배들의 실력이 모자라서일까?

이제 와서 후보자들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나열한다거나, 새삼스럽게 청와대의 검증 시스템에 대한 비판의 말을 보태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실 이런 소란은, 여야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정권이 겪어온 일이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공직 후보자들의 4대 필수과목(병역·탈세·부동산투기·위장전입)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그렇다면 고위 공직자 인선을 둘러싼 문제는 왜 개선되지 않고 매번 반복되어온 것일까? 매번 그렇게 난리를 치는데. 나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지난 이명박 정권의 인사를 두고, 사람들은 ‘고소영’ 내각이라며 비아냥거렸다. 실력이 아닌, 학벌과 인맥, 출신지역으로 출세하는 세상에 대한 일침을, 국민들은 그렇게 표현했던 것이다. 이번에 ‘성시경’ 내각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배경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본다. 납세와 국방의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도 한달에 몇억원씩 버는 후보자를 바라보면서, 국민들은 그렇게 해도-어쩔 때는 꼭 그렇게 해야만-성공할 수 있는 소위 ‘법치국가’라는 대한민국의 부조리를 조소하고자 했던 것이다.

고위 공직자 인선 때마다 벌어지고 있는 의혹의 향연은, 아마도 이 점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쉽게 말해,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서는 고위 공직 후보자에 이름을 올릴 수조차 없는 이 ‘불공정사회’ 현실에 있다는 말이다. 소위 ‘될 만한 사람’ 중에 의혹 없는 사람이 없는데, 대통령인들 무슨 재주로 한 점 의혹 없는 후보를 내놓겠는가? 매번 진흙탕 말싸움으로 흐지부지 끝나버리는 인사청문회는, 불법과 탈법으로 점철된 우리네 세상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일종의 클렌징 티슈에 불과했던 셈이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선배로서 이 세상의 일원이 될 것인데, 앞으로 얼마나 양심을 잘 지키고 법을 준수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고 두려운 마음이 앞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가슴 아픈 일이다.

무릇 눈 덮인 들판은 함부로 걷는 법이 아니라고 했다.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가 뒤따르는 사람에게는 이정표가 될 터이니. 좁게 보면 우리 개개인은 각자가 속한 학벌과 지역, 종교, 혈연의 구성원들이지만, 넓게 보면 모두가 대한민국의 구성원들이다. 즉, 우리 모두는 국민으로서, 이 땅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선배가 된다는 말이다. 오늘 이 순간에도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을 불법과 거짓된 기사들 앞에서, 선배인 우리 모두는 스스로에게 자문해보도록 하자. 이 세상의 후배들에게, 과연 나는 어떠한 선배인지. 우리가 그 질문 앞에서 당당해져 있을 때, 법치국가 대한민국은 한층 더 나아진 ‘공정사회’의 모습으로 성숙해져 있을 것이다.

이상윤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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