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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군 자살은 개인 문제”라는 김병관씨의 말을 듣고/ 허영춘 |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2005년 8월 월간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군 자살은 개인 문제”라는 의견을 밝혔다. 나는 1984년 4월2일 최전방 철책 중대에서 중대장 전령을 하던 일병 허원근의 아버지다.
김 후보자가 감히 국민들 앞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이는 한국의 현실을 너무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의 국정조사를 보면 약 6500명의 군인이 사망했다. 당시에는 전투가 있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간첩이 넘어왔다거나 전염병이 발병하지 않는 한 이런 수가 죽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근 30년을 살아가면서 겪어낸 군의 조사 방식을 보면서, 이렇게 하고도 자살이라고, 개인적인 문제라고 치부하는 군 장성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군대 사망 사건이 자살로 치부되는 것은 올바른 조사를 하지 않는 데 그 원인이 있다. 그 이유는,
첫째, 부검을 하는 의사는 죽은 자의 대변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국방부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죽은 자들이 자살로 위장되어지고 있다. 법무부와 경찰이 저지하는 바람에 아직도 검시관법이 제정되지 않고,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 현실에서는 모두가 자살로 처리될 뿐이다. 이는 국회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군의 조사 시스템이다. 모든 헌병 수사관들은 계급장을 뜯고 대통령 직속이나 사단장의 입김에서 벗어난 위치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 김 후보자가 말하는 자살이 타살 혹은 진상을 밝히지 못한 의문사로 확인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지금의 헌병대장은 직속상관인 사단장에게 절대복종해야 한다. 상관에게 해가 되는 조사를 할 수 있겠나? 알아서 기어야지.
셋째, 군법무관으로는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인사를 입영하도록 해야 한다. 제대 뒤에 취득하는 자격증 때문에 재직 기간 중에는 입을 열지 못하니, 군법무관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되고 있다. 사건기록을 검토는 해도 관여는 할 수 없는 이유는, 제대할 때 사단장이나 그 이상 상급자에게 곱게 보여야 변호사나 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1984년에서 2013년, 30년이 지나도 국방부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마치 관행처럼 시간 조작, 총성 조작, 총기 조작, 총번 수정, 탄피 조작, 사체 세척을 하고, 조사관 10여명이 둘러앉아 ‘너희들 책임질 수 있어?’라며 공격하거나, 자기들에게 불리한 조사기록은 버리는 등의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1984년에는 죽인 놈 데려오라, 아니면 죽이는 것 본 놈 데려오라고 하였는데, 요즘은 누군가 ‘누가 사람 죽였다’고 발표하면 명예훼손죄에 해당하지 않는지 검토해보라며 법무팀에 지시까지 한다. 그 덕분에 의문사위원이 800만원을 물기도 했다.
군 내부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사람은 국방부 장관 자격이 없다. 계급을 이용해 진실을 은폐·왜곡하여 타살을 자살로 위장하고 의문사로 바꿔내는 행위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국방부 장관은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군 자살이 개인 문제라는 김병관 후보자가 장관이 된다면 그 자체로 국군 장병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끔찍한 일일 것이다.
허영춘 고 허원근 일병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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