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03.11 19:24 수정 : 2013.03.11 19:24

“양보는 힘 있는 쪽에서 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로 야당을 이끌 때 한 말이다. 옳은 얘기다. 내정은 물론이고 외교와 남북관계에도 적용될 말이다.

북은 지난달 3차 핵실험을 한 데 이어 정전협정 효력 백지화를 선언하고 어제 군사직통전화를 끊었다. 키리졸브 한-미 합동 군사훈련에 대해 ‘제2 조선전쟁’을 언급하며 전례 없이 전쟁 위협 강도를 높이고 있다.

국제정치학자들은 미-소 간 핵 군비 경쟁으로 상호확증파괴(MAD)의 위기까지 치닫던 동서 냉전이 실제로는 ‘긴 평화’(A Long Peace)의 기간이었다고 역설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반도의 최근 정세를 ‘공포의 균형에 의해 전쟁이 없는 상태’와 동일시하는 것은 위험하고 안이하다. 핵전쟁은 아니더라도 장사포 공격이나 기습 군사 도발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2의 연평도 포격 도발이 감행될 경우,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물러서지 않겠다면서 상대를 벼랑 끝으로 몰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우리가 비난하는 북한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치킨게임은 기본적으로 이성적인 게임이 아니다. 바보들의 게임이다. 애초에 이런 구도에 말려 들어선 안 된다.

북이 핵을 외치는 이유가 그들이 전쟁광이고 실제로 전쟁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북의 위협적 반응에는 속사정이 있다. 북한은 경제력에서 대한민국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자기 국민도 못 먹여서 대한민국에까지 손을 벌리고 체제 불안 때문에 주민통제에 의존하는 나라다. 핵무기를 내세워 ‘같이 죽자’ 식으로 버티는 가련한 처지다. 한-미 기동 군사훈련인 독수리훈련에는 한국군 20만명, 미군 1만명이 동원된다. 맞대응 차원에서 가뜩이나 부족한 연료를 투입해 전투기를 띄우고 탱크를 움직이려면 북은 내심 미칠 노릇일 것이다.

군사전략에 ‘소모전’이라는 게 있다. <손자병법>에도 나온다. 경제력과 군사력이 우월한 쪽에서 군비를 증강해 맞대응하는 적국의 군사력이 소진할 때까지 압박해 결정적 승리로 이끄는 군사전략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냉전을 종식시킨 것은 대소련 강경전략 덕분이라는 주장이 있다. 일명 스타워즈 계획으로 알려진 전략방위구상을 내세워 우주공간에서의 미사일요격시스템 개발 등에 막대한 달러를 쏟아부었다. 당황한 소련이 맞대응하는 과정에서 가뜩이나 곤란한 경제를 망쳐 결국 붕괴를 촉진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지금 우리가 북한을 상대로 해 ‘소모전 전략’을 취할 때인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북한붕괴론에는 소모전 전략과 유사한 발상이 자리잡고 있다. 20년이 넘도록 매일같이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를 주장하던 사람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가? 북한은 붕괴하기는커녕 핵무기 개발로 맞서지 않았는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의 퍼주기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도와준 셈’이라는 주장도 너무나 무책임하고 악의적이다. 적어도 그 10년 동안 군사적 긴장은 완화되었고 북의 핵개발 명분과 의지를 약화시킬 수 있었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의 강경일변도 대북한 정책이 오늘의 사태를 자초한 면이 크다. 미국의 오바마 1기 정부도 ‘전략적 인내’를 내세워 북의 핵개발을 방치한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워싱턴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엠비 정부의 잘못된 유산에 갇혀 스스로 손발을 묶어서는 안 된다. 북과의 대화는 ‘나쁜 행동에 대한 보상’이라며 외교 자체를 막아버리는 것은 군사충돌의 피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미국이나 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사태의 극단화를 막는 결단이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를 본받아 강력한 리더십을 세우고 싶어할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가 말했다. “눈에는 눈 식으로 하면 온 세상은 모두 눈이 멀어버리게 될 것이다.” 현재 남북 사이의 위기가 한쪽의 일방적 양보로 해결될 성격의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눈에는 눈’ 식의 대응과 소모전적 군사 대결이 과연 대한민국의 국익에 부합하고, 국민의 안전을 위한 최선의 길인지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가의 안위를 책임진 군통수권자로서의 고충을 이해한다. 그는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고 북한 정권의 속성을 잘 알고 있다. 2004년 6월 남북정상회담 4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6·15 남북 정상회담이 남북간의 화해, 협력, 긴장 완화에 기여한 점에 대해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한다”고 말한 것을 나는 그 자리에서 듣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할 일은 지금의 군사적 대치와 충돌위기 국면을 제어하는 정치력과 외교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위기의 시점에서 국가 최고책임자가 참모들의 비이성적 집단사고나 감정적 여론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앞으로 적절한 시점에 남북 정상회담도 추진해야 할 것 아닌가? 박 대통령이 국가지도자로서의 진정한 용기와 위기 극복의 외교력을 발휘할 것인지 국민과 세계는 지켜보고 있다.

김한정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