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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11 19:26 수정 : 2013.03.11 19:26

대한민국의 소비자님께. 출퇴근길에 익숙했던 식당이나 상가 점포가 문을 닫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장사가 시작되는 모습을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망해버린 주인은 어떻게 살까를 생각하며 걱정스런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던 기억이 떠오르실 겁니다. 지난해 폐업한 자영업자가 83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확대되고, 비정규직이 양산되었지요. 그러한 직장에서도 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분들이 문을 연 것이 동네 자영업입니다. 이런 분들은 점포가 망하면 날품을 팔거나, 도시빈민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최근 서울시가 전통시장과 동네슈퍼에 도움을 주고자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서 팔지 말아야 하거나 제한적으로만 판매할 수 있는 품목을 선정했습니다. 채소·담배·술·피자·치킨 등 51개 품목이 그 대상입니다. 이에 대해 대형마트는 영업권 침해이며, 소비자들에게 불편을 초래한다면서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번 서울시의 품목제한 추진은 새로 출점하는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에 대해 중소상인이 사업조정을 신청할 경우 51개 품목을 기준으로 판매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어서, 기존 영업점에 강제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소비자님이 지금 다니는 마트에서 채소를 못 사서 두번 장을 봐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지요. 물론 상황에 따라 앞으로 개설될 마트 등에서 채소나 술을 살 수 없게 될 가능성은 있겠지만요. 따라서 그것이 일정한 불편이 따른다는 것은 아예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도, 그런 불편이 시장 상인이나 동네슈퍼 집안이 망하는 것을 막아준다면 어떨까요?

이제는 마트가 익숙해져서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대형마트가 대한민국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랍니다. 그 전에는 대형마트 같은 대형 소매점은 허가제로 운영되어 별문제 없었어요. 그러나 당시 유통시장 개방에 따른 대형 유통업체를 키우기 위해 허가를 받지 않아도 대형마트 사업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하면서 대형마트가 급속도로 확대된 것이지요. 대형마트의 급속한 확장은 그만큼 재래시장의 축소와 폐쇄를 낳았고, 뒤이은 기업형 슈퍼마켓의 등장은 수많은 동네슈퍼를 문 닫게 했지요. 1999년 당시 46조원에 이르던 재래시장의 매출액은 2010년 24조원으로 반토막이 났고, 대형마트는 매출액이 7조원에서 36조원으로 급증했다지요. 그 뒤 지금 남아 있는 시장과 동네슈퍼도 문 닫기 일보직전이 대부분입니다. 그 가족을 생각해보면, 장래 집 가까이 들어설 기업형 슈퍼마켓에서 채소나 담배를 못 사는 불편 정도는 참을 만하지 않나요?

프랑스 파리 시내에는 대형마트가 없답니다. 국가가 동네 자영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시내에 점포를 낼 수 없게 했기 때문이지요. 서울시의 대형마트에 대한 영업제한은 잘못된 국가의 정책을 조금이라도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또 북유럽은 물론이고 미국과 독일에서도 대형마트 등에서 팔 수 있는 품목을 제한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고 하니, 서울시의 권고가 유별난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싶네요.

경제민주화, 어렵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이 주인으로서 떳떳하고 당당하게 경제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함을 정하고 있지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적당한 수준의 대가를 받고 억지로 굽실거리지 않으며 일을 하고 먹고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경제민주화입니다. 사람이 자존심 지키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입이 있어야 합니다. 국가가 국민이 먹고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경제민주화인 것이지요. 경제에서의 억강부약, 곧 강자의 독식을 막고 약자를 부축해 주는 것이지요.

소비자님, 지금 당신은 소비자이지만,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경제에서의 억강부약을 실천할 국가의 주인이지요.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 아파하는 시민이기도 하고요. 또 소비자임과 동시에 노동자, 또는 자영업자일 것입니다. 주위에 실직자, 점포를 닫은 자영업자가 있지 않나요? 자신의 직업과 경제적 안정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시장 상인과 동네슈퍼 주인을 생각해 주세요.

김성진 변호사·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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