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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13 19:26 수정 : 2013.03.13 19:26

며칠 전 라디오에서 한 청취자의 사연을 들으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맘에 안 드는 친구를 집으로 데려오는 작은아들에게 “좋은 친구를 사귀라”고 충고를 하였단다. 그러자 아들이 “내가 그 친구에게 좋은 친구가 되면 안 돼?”라고 반하였다고 한다. 친구마저도 내 자식에게 보탬이 될 것인가를 가늠하고 저울질하는 엄마에게, 아들은 ‘친구’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이 청취자는 아들의 반문에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단다. 필자도 마찬가지로 진한 감동과 함께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마음인문학연구소에서 지난 1년 동안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을 심층 면접했다. 부모의 과도한 관심과 욕망이 우리 아이들을 질식시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저학년일 때는 여유 있게 꼴을 봐주지만, 고학년이 되면 자녀들의 장래를 생각하며 걱정이 앞서기 시작한다. 점차 자녀에 대한 기대를 실어 잔소리(특히 “공부하라”)를 하게 되고, 아이들은 그 무게와 압박감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러한 공감대를 공유한 또래들끼리의 공간·도피처를 모색하게 된다.

“쉿! 비밀이에요.” 초등학교 5, 6학년 학생들이 말한다. 엄마 아빠보다 친구들이 더 좋은데, 이 이야기를 엄마 아빠가 들으면 얼마나 속상해할까 생각하며 ‘비밀’이란다. 이미 우리 애들이 엄마 아빠 머리 꼭대기에서 부모의 마음까지 미리 헤아리고 있다. 그러면서 친구와 부모 사이를 줄타기한다. 좋아하는 친구와 좋아해야 하는 부모 사이에서 말이다.

사춘기에 접어들면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친구에게 가 있는데, 속상해할 부모 때문에 절묘한 연극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이 부모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생존의 게임 같다는 생각도 든다. 부모에게 자기들의 은밀한 곳, 속내를 들키면 그것마저도 관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놀이의 공간인 학교와 놀이의 대상인 친구를 은밀한 사적 영역으로 유지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공부하는 곳, 미래에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장으로서 학교를 인식하는 교육제도와 부모들로부터 말이다.

주5일제가 정착됐다. 정치권이나 제도권에서는 진보 혹은 복지의 성취로 간주할 수도 있다. 표면상으로는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에게 수업시간을 줄여주고 (공부) 부담을 줄여준 성취처럼 보인다. 그런데 수혜자인 아이들은 좀 다른 생각을 보였다. 심층면접 같은 사적 공간에서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낸다. 집도, 학원도, 골목도 숨을 쉴 수 없는 공간이란다. 유일하게 친구들이 있는 그곳, 학교가 자신들이 어울려 숨 쉴 수 있는 곳이란다. 그런데 주5일제가 자신들의 이러한 공간을 유린하였단다. “설마”라고 반문했지만 아이들의 대답은 확고했다.

많은 아이들이 토요일에도 학교에 나오고 싶어 한다. 이유는 친구를 만나서 놀 수 있기 때문이란다. 정치권과 부모, 그리고 교사들은 학교를 학업의 장으로 규정하려 하지만 많은 아이들에게 학교는 놀이의 생태 공간이다. 서로 어울려 삶을 조율해가는 생태 공간. 친구들끼리 편을 가르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는, 그러면서 성숙해 가는 삶의 공간 말이다. 기술적 지식을 넘어 인간관계의 지혜를 성숙시켜 가며 평생을 함께할 친구들을 만나는 공간. 그곳에서 아이들은 삶의 지혜를 구하는데 어른들은 이기적인 지식 습득, 학업 성취만을 이야기한다. 부모와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체험학습장으로서의 집과 훌륭한 생태공간으로서의 골목이 사라진 지금, 아이들은 그들의 은밀한 공간을 학교에 만들고 있다.

그런데 이 해방공간에 헬리콥터가 점점 더 많이 떠다니고 있다. 각종 현대 문명의 이기를 동원하여 감시의 눈길을 강화하고, 끊임없이 교육제도에 개입하고 교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서구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헬리콥터 부모’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진정 교육개혁을 하려면 헬리콥터를 착륙시켜야 한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성장한다. 이 성장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부모의 왜곡된 욕망이 투사된 교육은 아이들을 병들게 한다. 교육제도는 아이들을 어떻게 학업성취를 시킬 것인가를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잘 어울려 놀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한내창 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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