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은 18일 ‘국정원장 발언 유출 관련 입장’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천안함 폭침, 4대강 사업 등 국가 주요 현안의 경우 북한이 선동지령을 하달하면 고첩 및 종북세력이 대정부 투쟁에 나서고, 인터넷 등을 통해 허위주장을 확대재생산하는 현실에 국정원장으로서 적극 대처토록 지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국정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국정원은 국가 안보라는 중대 사안에 관해 직무유기를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만약 국정원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전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 주요한 사안을 두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이다. 첫째, 국정원은 직무유기의 가능성을 스스로 열어놓고 있다. 국정원은 이 보도자료에서 천안함과 관련한 두 가지의 주장을 “현실”이라고 못박고 있기 때문이다. 즉 (1)한국에서 일부 세력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행동했다는 것이고 (2)허위 주장을 확대 재생산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지령에 따라 행동한 개인과 단체들이 한국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명백히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것이다. 북한의 지령을 받았으니 반국가단체와의 통신을 금한 보안법 8조를 위반한 것이고, 그 지령에 따라 행동했으니 같은 법 4조를 위반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현실”을 국정원은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개인과 단체들이 비밀 활동을 한 것도 아니고 “대정부 투쟁”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허위주장을 확대 재생산”하는 등 공개적 활동을 했다면 국정원은 당연히 이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체포하여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처벌했어야 한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반국가단체의 지령 수수 및 추종을 이유로 보안법 위반 죄로 처벌된 사례는 전혀 없다. 국정원은 국정원장의 “적극 대처”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것인가. 그렇다면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이다. 둘째, 여러 정황들은 국정원이 직무유기를 했다기보다는, 위의 주장이 허위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필자들이 이전의 기고문(‘이명박 대통령의 위험한 천안함 왜곡’, <한겨레> 2012년 6월13일치)에서도 밝힌 것과 같이 ‘천안함 폭침설’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한국의 누리꾼들과 필자들과 같은 전문가들이 먼저 제기한 것이다. 북한은 나중에야 한국 안에서 제기된 문제점들을 되풀이해 언급하면서 자신들의 책임을 부인했다. 선후 관계가 명확한데, 어떻게 먼저 발언하고 행동한 사람들이 나중에 움직인 북한의 주장을 추종할 수 있는가. 사실이 이렇기 때문에 천안함 ‘폭침설’에 문제를 제기한 인사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했지만 보안법을 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국방부 장관은 박선원 박사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합동참모본부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해군은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를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천안함 사건으로부터 3년이 지난 오늘까지 국정원이 단 한 명도 처벌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국정원의 ‘종북’ 주장을 스스로 부정한다. 뿐만 아니라 필자들을 포함한 전문가들의 과학적인 결론은 ‘폭침설’을 뒷받침하는 물질적 증거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국정원은 국정원장의 발언을 정당화하려다 스스로를 자승자박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정원의 ‘종북’ 주장이 사실이라면 직무유기이고, 그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허위사실 유포이다. 어느 쪽이라도 처벌이 불가피하지 않은가. 위 두 가지 중 어느 쪽이 사실인지는 국회가 국정조사로 밝혀야 할 것이고, 밝혀진 사실에 따라 책임자의 적절한 처벌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안보와 민주주의를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이승헌 미국 버지니아대 교수
서재정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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