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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로컬푸드, 가족소농이 근간이다 / 임정엽 |
전세계에 걸쳐 로컬푸드 바람이 거세다. 먹을거리 세계화는 필연적으로 지역소농 해체, 농촌공동체 붕괴, 밥상안전 위협, 식문화와 종자 획일화, 먼 거리 이동에 따른 지구환경 위협이란 부작용을 낳는다. 이에 대한 치유책으로 등장한 것이 식(食)과 농(農)의 물리적·사회적 거리를 줄이자는 로컬푸드다.
우리 사회도 최근 로컬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새 정부 들어 최대의 정책이슈 중 하나가 ‘유통구조 개선’으로 모이면서 농협은 물론이고 대형마트까지 앞다투어 로컬푸드 추진을 공언하고 나섰다. 솔직히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
완주에는 두 개의 로컬푸드 직매장이 성업중이다. 단위농협과 공공형 농업회사법인이 운영주체다. 400여명의 소농이 매일 아침 스스로 가격을 매기고, 이력 라벨지를 부착해 정해진 판매대에 진열한다. 1일 매출은 5000만원, 고정소비자 1만5000명이 1주일에 2~3회 매장을 찾고 농민을 만난다. 주말이면 소비자 가족은 농촌마을 팸투어를 떠나 농업, 농촌의 현실과 농산물의 생산과정을 체험하고 공감한다.
직매장을 매개로 삼아 상생의 원리를 터득해가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밝은 기운도 좋지만, 이것이 불러일으키는 연쇄반응은 더더욱 놀랍다. 두부 만드는 마을만 6개가 넘고, 생계가 어려운 여성들의 일자리 ‘마더쿠키’는 한 달 2500만원으로 소득이 안정됐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쑥이며 냉이며 신선한 채소와 건나물을 직매장에 내면서 매달 100만~200만원을 버는 ‘월급 받는 농부’로 거듭나고 있다. 이것이 완주군이 로컬푸드를 통해 만들어가는 6차 산업화, 협동공동체, 농촌형 창조경제의 실행모델이다.
로컬푸드는 단순한 유통단계 축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핵심 가치는 설 자리를 잃은 가족소농 유지와 생산자와 소비자간 멀어진 사회적 관계의 회복에 있다. 이는 곧 도시와 농촌의 불균형을 치유하는 실질적인 수단이자 수입개방의 외풍에 맞서 농업, 농촌이 국민과 소비자를 등에 업는 전략이기도 하다. 베이비붐 세대를 귀농귀촌으로 유도할 수 있는 최적의 촉매제다.
대형마트의 로컬푸드 진입 선언은 이율배반이다. 1996년 유통시장 개방 이후 시장독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도시와 농촌, 생산과 소비를 끊임없이 분리시켜온 장본인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이들의 행태는 꼼수다.
로컬푸드는 농산물 유통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대규모 상업농이 장악해야 할 공간도 아니다. 농협도 직매장 개설과 운영 때 정보와 관계망에서 절대적 우위에 있는 상업농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혹자는 우리 사회의 쉽게 끓고 식어버리는 냄비근성을 지적한다. 새 정부 들어 모처럼 마련된 유통구조 개선, 직거래 활성화, 특히 가족소농을 살리는 로컬푸드가 한때의 냄비현상으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한다. ‘신토불이 캠페인’의 창대한 시작과 초라한 끝을 지금도 기억하지 않는가? 소농과 지역, 밥상을 함께 살리는 로컬푸드 봉화가 방방곡곡에서 피어오르기를 학수고대한다.
임정엽 완주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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