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냐면] 국회, 수화언어기본법 제정을 추진해야 한다 / 김철환 |
영화 <도가니> 사건의 모델이었던 광주의 청각장애인 학교 행정실장이었던 이가 얼마 전 징역 8년, 전자발찌 착용 10년의 형을 받았다. 파렴치한 행위에 비한다면 아쉬운 부분이지만 이 사안에 대해 형이 집행되었으니 ‘도가니’ 사건도 얼추 봉합된 듯 보인다. 하지만 ‘도가니’에서 드러났던 문제 가운데 여전히 진행형인 것이 있다. 청각장애인들의 학습권과 의사소통권이다.
<도가니>를 보면 특수학교 교사인데도 청각장애인들에게 수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학교의 임직원들도 마찬가지이다. 수업시간에도 그렇고, 폭행이나 체벌을 가할 때도 그렇다. 이는 영화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도가니’ 문제가 터진 뒤 많이 나아졌지만 청각장애학교의 문제는 심각하다. 전국 청각장애학교의 특수교사 6.1%만이 수화통역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는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가 이를 잘 말해준다.
이러한 문제의 이면에는 수화에 대한 편견, 청각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도사리고 있다. 청각장애인들은 수화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다. 이러다 보니 청각장애인들이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고, 정보를 충분히 지원받지 못한다. 상황이 이런데 어느 부모가, 교사가 청각장애 아동에게 수화를 사용하라고 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을 권리로서 보장하는 것이다. 곧, ‘(가칭)수화언어기본법’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수화가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보편적인 언어로 인정을 받도록 해야 한다. 또한 청각장애인들이 수화를 사용할 권리와 수화통역 등을 제공받을 권리, 청각장애인의 고유한 문화를 향유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영화 <도가니> 이후 장애인정보문화누리 등 장애인 단체들이 ‘수화언어권공대위’(약칭)를 구성하여 운동을 진행한 것이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운동을 한 결과로 정부로부터 청각장애인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청각장애인 학교 교사의 수화통역사 자격 취득 추진 등 청각장애인 교육 개선은 물론이고 수화 언어를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기본법도 만들겠다는 약속도 받아놓은 상태이다.
하지만 정부의 움직임이나 장애인 단체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국회의원들은 이 문제에 관심조차 없다. 영화 <도가니>가 사회문제가 되었을 때 국회의원들이 문제 해결을 촉구하던 그 목소리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늦었지만 국회는 ‘도가니’ 사태가 터졌을 때 보여주었던 목소리를 수화언어기본법을 만드는 데 다시 보여주어야 한다.
이런 목소리를 보여 달라고 ‘수화언어권공대위’가 국회에 입법청원을 하고 있다. 법률을 만들어 수화는 물론이고 청각장애인 문화 정체성을 인정하고,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권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수화를 전달하는 통역사의 권리를 보장하고, 인식 개선을 위하여 시민들이 쉽게 수화를 배울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국회의 소임은 국민의 권익에 필요한 법률을 손질하고 만들어내는 일이다. 따라서 끝나지 않은 ‘도가니’ 사건의 한 자락인 청각장애인의 교육권과 의사소통권을 해결하기 위하여 국회는 수화언어기본법을 만들어야 한다.
김철환 장애인정보문화누리 활동가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