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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13 19:37 수정 : 2013.05.13 19:37

건설현장을 전전하는 김씨는 일거리가 늘 있는 게 아니다. 홀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이 있다. 남편의 벌이가 일정하지 않으니 부인이 식당 일이라도 찾아보려 하지만 시어머니와 두 딸 때문에 집을 비우기가 쉽지 않다. 기초보장수급자 신청을 해보았지만 대도시 다가구주택 반지하 방에서 살더라도 일정 재산을 초과한다는 이유로 신청에서 탈락했다. 김씨 가정은 빈곤 사각지대의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정부는 기초생활보장제도에 의존해왔던 빈곤정책의 틀을 크게 개편하려 한다. 빈곤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 포괄적인 맞춤형 복지제도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기초생활보장제도하에서는 일단 수급자로 선정되면 생계 의료 주거 교육 급여를 한꺼번에 통합하여 제공하고 있다. 그동안 기초생활수급자는 빈곤층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대표적인 잣대가 되었다. 수급자가 되면 기초생활보장 이외의 정부에서 제공하는 각종 복지혜택도 받게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이 때문에 빈곤층이 기초생활수급 빈곤층과 비수급 빈곤층으로 양분화되었다. 양분화로 인해 각종 복지혜택을 받는 수급 빈곤층의 소득이 비수급 빈곤층보다 많아지는 역전현상도 벌어진다. 어정쩡하게 가난한 것보다는 절대적으로 가난해야 국가의 보호를 확실히 받게 된다. 그래서 절대빈곤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기초생활수급자의 혜택에 안주하려는 동기를 부여한다. 이번 정부의 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은 개별 가구의 다양한 복지요구를 충족시켜주는 맞춤식 급여를 제공하는 제도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취업을 하고 있지만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근로빈곤층에는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고용과 복지 서비스를 충실하게 연계하여 제공하는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복지정책에서 소외되는 빈곤층 규모는 매우 크다.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중위소득 50% 이하를 빈곤층으로 정의하면, 2011년 현재 우리나라의 빈곤층 규모는 760만명에 이른다. 국민 7명 중 한 명이 빈곤층인 셈이다.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9년보다 큰 규모이다. 하지만 현재의 빈곤정책은 극빈층 140만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머지 빈곤층이 실질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빈곤층인 셈이다.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 포괄적인 사회안전망 구축이 필요한 이유이다. 취업해도 가난한 근로빈곤층의 규모는 2011년 약 300만명에 이른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복지실태조사). 빈곤아동 대부분은 근로빈곤가구에 속해 있다. 이 때문에 빈곤 탈출은 현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 세대의 문제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빈곤정책은 근로빈곤층의 자립을 지원하는 데에 필요한 복지혜택과 고용지원을 제대로 연계하지 못했다. 부처칸막이 때문이다.

다양한 고용복지제도를 하나의 통합된 제도로 만드는 것이 이상적이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고용복지제도들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다. 제도간 연계와 부처간 분업 시스템으로의 개편은 사업 시행의 주체인 부처의 눈으로 바라보던 고용복지제도를 수요자인 국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읍면동 센터에서 빈곤가정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 필요한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거나 다른 서비스 기관을 알선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새로운 제도로 개편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많은 장애 요인과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다양한 욕구별 급여제도로 전환하게 되면 다양한 수급자가 발생하게 되어 대상자 수는 크게 증가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혜택이 줄어드는 집단이 생겨날 수 있다. 따라서 기존의 수급자가 크게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점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야 제도개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민원과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 새로운 빈곤정책이 성공적으로 연착륙되기 위한 조건을 들자면 △갈등의 소지를 최소화하는 충분한 예산의 뒷받침과 △정책이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집행될 수 있는 제도간 연계 △행정시스템의 수요자 중심 개편이다.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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