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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능욕, 인륜이 아니다 / 오세근 |
최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계열의 종합편성 채널인 <티브이조선>과 <채널에이>가 탈북난민 인터뷰를 통해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주장을 방영했다(<한겨레> 5월17일치). 반공보수 세력 내부의 정치 이데올로그 동원으로는 일반 시민의 지지와 신뢰를 얻기 어렵다 보고, 현재 남북의 정치·군사적 긴장상황을 배경으로 삼아 익명의 탈북난민 증언을 통해 선전 효과를 키우고자 한 것이라 본다.
그런데 종편을 포함해 현재 사회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진행하고 있는 반공보수 세력의 ‘5·18 거세 기획’은 자신들의 정체성 역시 함께 부정하는 한편의 희극이기도 하다. 반공보수 세력을 잇는 적통의 한 매듭인 민주자유당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5월13일 특별 담화에서 자신의 문민정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정부”라고 선언했다.
그러면 이들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시민의 기억을 혼란스럽게 하고 민주화운동으로서의 정치적·법적 승인을 철회하려는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득을 얻어내기 위한 것인가. 우선, 장기적 포석이다. 어떤 성향의 반공보수 정치 분파가 정권을 잡더라도 원죄로서 떠안게 되는 ‘1980년 5월 광주학살’에 대한 정치적 알리바이 만들기이다. 곧 정치적 유전자의 염기서열 조작이라 볼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호남을 지지 기반으로 하여 출현할 수 있는 정치인을 고사시키고, 정치권력이 배제된 지역들 사이의 이익동맹을 결성하지 못하도록 하는 ‘빈볼 던지기’다.
반공보수 세력의 장기적 프로젝트이든, 단기적 의도이든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훼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반인륜적이고 반문명적이다.
첫째, 5·18 민주화운동은 “폭정과 강탈이 명확하게 일관된 목적을 갖고 시민을 전제 하에 두려는 의도를 가질 때는 그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보장기구를 갖는다”(미국 독립선언서)는 현대 시민사회 시민의 권리와 의무 이행의 전범을 보인 것이다. 바꿔 말해, 5·18 민주화운동은 인간의 존엄 및 자유의 진정한 가치를 위해 시민들 스스로가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가지고 헌신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준 새로운 문명이다.
둘째, 5·18 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24일 전남대학교 교수의 성명서에서 상징적으로 엿볼 수 있는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피워낸 사람다움의 추구, 곧 인륜의 형성이기도 하다. 성명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광주에서 일어난 모든 참상은 이루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공수특전단의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만행이 선량한 시민들을, 지성인들을 미치게 했다는 사실을 인지해주십시오.” 바로 5·18 민주화운동은 생명·자유·행복추구의 권리 체계로서 민주주의를 인간이 자각하고 스스로 실현하여 사람다움을 상실하지 않으려 한 인륜적 결단이었다.
이처럼 5·18 민주화운동은 사랑과 헌신과 협동의 공동체 건설 가능성 그 자체이다. 나아가, 인간의 전면적 발달을 보장하기 위한 민주주의의 긴 행로에서 시대를 구획하는 커다란 ‘살풀이’이자 신명난 ‘축제’이다. 따라서 이런 축제에 재를 뿌리는 것은 능욕이자 반인륜적 행위에 다름 아니다. 죽임에 대한 살림이었고, 독식을 거부한 나눔의 공동체였던 오월의 아름다움이 다시 피어나도록 지금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오세근 동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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