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냐면] 학비노조 받아들이는 게 민주노총 원칙
|
비판에 성역이란 있을 수 없다. 민주노총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비판 중에는 타당한 근거와 방향을 제시하기보단 감정적 힐난에 그치거나, 전후 사정을 살피지 않고 덮어놓고 손가락질부터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중지란이 아닌가 싶고, “민주노총이 동네북이냐!”는 하소연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 하더라도 민주노총은 비판에 귀 기울여야 할 사회적 책임이 있다. 그러나 보수언론의 악의적인 왜곡보도엔 언론중재나 소송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언론이 앞세우는 근거는 소위 ‘사실’(팩트)이다. 그러나 얄팍한 핑계에 불과하다. 어떤 사건이나 현상은 대개 여러 요인이나 관계로 구성된다. 이를 모를 언론은 없다. 그런데도 언론은 한 사건을 구성하는 여러 사실 중 부분만 선택해 보도하는 방식으로 실체를 왜곡하고도 사실을 보도했다고 주장한다.
의도했든 안 했든 5월2일치 <한겨레> 1면 보도 ‘비정규직 내치는 민주노총’은 그러한 ‘선택적 사실에 의한 왜곡’에 해당한다. 한겨레가 보도한 학교비정규직노조(학비노조)의 주장은, 그렇다, 있었던 사실이다. 그러나 일방의 주장만으로 학비노조의 민주노총 가입 문제를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우선 제목의 과도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민주노총이 무기력할지언정 ‘내침’이라는 의도성을 가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귀족노조라는 성토를 달게 받아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은 학비노조를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원칙으로 여겨왔다. 이를 반대하는 내부 조직은 없다. 다만 또 하나의 원칙이 있다. 민주노총은 현재 16개 산별연맹으로 구성돼 있는데, 가능한 기존 조직을 통합하여 대산별, 곧 궁극적으로 하나의 노조로 통합하는 것을 조직발전의 원칙으로 한다. 이에 따라 학비노조는 조직 성격이 확연히 다르지 않은바, 기존 산별연맹 체계에 가입해야 한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원칙이 갈등에 빠졌다는 것인데, 그 원인은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 내부의 이견이다. 학교비정규직 중 기존 산별연맹에 가입한 한쪽은 들어오라고 하고, 다른 한쪽의 학비는 들어가지 않겠으니 별도의 연맹을 만들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물론 이견을 조정하지 못한 민주노총의 책임은 있다. 그럼에도 학비의 내부 갈등을 도외시한 채 민주노총이 학비노조를 내친다고 규정하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민주노총에 비정규직 문제는 늘 중요한 과제다. 민주노총은 2003년부터 비정규직 조직화를 전략적 과제로 설정하고 인력과 재정을 투여해왔다. 이를 위해 20억이 넘는 기금을 조성하여 2013년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 수만명을 조직하는 성과를 냈다. 그 성과의 일부인 학비노조 조직화는, 물론 당사자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해야 하지만, 그들과 더불어 민주노총 지역본부 또한 조직화에 참여했으며 그 과정에서 6000여만원이 지원되기도 했다. 이렇듯 민주노총의 인적·물적 자원이 투여된 성과를 민주노총 스스로 내친다는 것은 앞뒤도 맞지 않는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의 역할은 전혀 없이 학비노조의 독자적인 성과처럼 보도된 것은 민주노총 활동가들에게 적잖은 허탈감과 상처를 주고 말았다.
한겨레가 비정규직 문제에 각별한 관심이 있으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민주노총에 각성의 죽비를 들고자 하는 소명의식이 있음을 안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비판인지 기사의 초점이 우려스러울 때도 간혹 있다. 노동절을 전후로 한 한겨레의 사설과 기사는 그 보도시기로 인해 더욱 실망스럽다. 노동절이 “축하해야 할 날이지만, 선뜻 손바닥이 마주쳐지지 않는다”는 걱정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와 사용자들의 분리지배 노동정책에 휩쓸리기라도 하듯, ‘분열을 딛고 단결로’(5월1일 사설)라며 정규직 비판에 초점을 맞추는 관점은 아쉽다. 분열이란 무엇인가? 당사자들의 의지에 따른 갈등을 의미한다. 그 어떤 노동자들이 갈등을 원했단 말인가. 누가 만든 갈등이란 말인가. 자본이란 원래 그렇다며 넘기고 민주노총을 바로 세우는 일이 시급하단 뜻인지 모르겠지만, 모든 노동이 자본에 종속됐으며, 단결하지 못하도록 갈라치는 자본의 지배 아래 살고 있음을 한겨레가 강조해주길 바란다.
박성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대변인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