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6.05 19:16
수정 : 2013.06.05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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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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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 100일. 쌍용차 노조 김정우 지부장이 연행된 횟수와 유치장에서 잠든 시간과 경찰에 짓밟힌 진단 일수를 채워 넣으면 같은 숫자가 될 것이다. 동료의 죽음을 보면서 차려진 대한문의 농성장은 꽃밭에 빼앗겼다. 171일 동안 15만4000볼트의 고공 송전탑에서 약속을 지키라던 애절한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철탑에서 내려오던 날, 잘못한 것 하나 없으면서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복기성 조합원은 내내 울었다.
대통령 취임 100일, 박근혜 정부의 평점은 높다. 대통령이 무엇을 잘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나는 이것만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어느 순간 나부끼기 시작한 정부 여당의 “돈이 도는 경제민주화”에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없다는 것을. 불행하게도 우리는 죽은 자들에 대한 예의조차 갖추지 않는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두었다. 회계조작으로 고의적인 부도가 났고 3000명과 가족들이 하루아침에 절망으로 떨어졌다. 그 아픔이 24명의 죽음으로 나타났다. 대통령 후보는 죽음을 막기 위해 나선 이들과 국정조사를 약속했다. 아무리 공약이 입에 발린 소리라 한들 인간이라면 예의를 다해 지켜야 한다. 약속조차 지키지 않는 대통령에게 무슨 성공을 붙일 수 있을까.
H-20000 프로젝트 덕분에 오랜만에 쌍용차 해고자들이 작업복을 입었다. 그들은 항상 했던 일처럼, 낯설지 않다고 했다. 임팩트 소리와 기름 냄새는 정겹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작업에 임하는 그들의 눈빛은 단단했다. 그들 중 누가 능력이 없어 정리해고 되었을까. 그들을 산 자와 죽은 자로 가른 운명의 잣대는 누가 쥐고 있었을까. 정작 그들을 분리폐기한 정당한 이유가 있기는 했을까. 고통과 분노의 세월이 흘러도 생산의 도구를 든 노동자들은 몸으로 익힌 것은 잊히지 않는다며 웃는다. 비통한 자들의 마음이 깨져 산산이 흩어지지 않고 열릴 때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한 것처럼, 그들의 비통함은 세상을 향해 열리고 있는 중이다.
나의 아버지도 시멘트공장에서 시작한 그 회사 쌍용을 다녔다. 정년을 앞두고 자진 퇴사했지만, 아버지는 마치 직장을 빼앗긴 사람 같았다. 아버지의 어깨는 쉽게 펴지지 않았다. 아침 7시면 출근하던 어김없는 일상이 사라지자 당신은 급속히 늙어갔다. 그래서 아버지가 다른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 죄송한 마음보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당신에게 다시 생기가 생겼다는 것을 알아서였다. 일자리가 고용주와 피고용자의 계약관계만으로 설명되지 않음을, 그때의 아버지를 통해 배웠다. 그래서 내게 해고자들은 당시의 아버지처럼 보인다. 해고가 살인인 것은 생존의 언덕이 가파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생산의 주역이며 한 가족이라던 회사에 손실비용으로 계산된 인격. 그 훼손이 쉽게 보상되겠는가.
그런데 보상에 앞장서 나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통령은 물론이거니와 유력한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아니다. 거리에서 보낸 5년 동안 해고자들을 단단하게 만든 힘. 그 사람들은 해고자들이 이전에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었던 이름 없는 시민들이었다. 빼앗긴 대한문 농성장을 지키기 위해서 이유도 없이 찾아와 노동자들 곁에서 함께 밤을 새운 사람들. 경찰에게 두들겨 맞는 그들을 온몸으로 감싸 안은 이들. 해고자들은 우산 없이 같이 비를 맞아주는 그들이 있어서 살고 있다. 아픔을 나눠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치유되는 중이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가는 날, 우리는 어쩌면 세상을 조립하는 정비공들, 희망을 제조하는 노동자들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그 꿈이 이뤄지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2만개의 부품으로 흩어졌으나 다시 조립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차가 그날을 향해 시동을 걸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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