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냐면] 전력과 천연가스, 민영화가 아니라 통합이 해법 / 배병인 |
사상 초유의 전력난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에 강제 절전을 포함한 특단의 조치들이 제시되고 있다. 지난 몇 해 동안 전력난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에너지 정책의 실패, 특히 전력산업의 민영화에 따른 수급조절 능력의 상실에 기인하는 바 크다. 에너지 과소비를 지적하기에 앞서 정책의 실패를 되짚어 봐야 하는 이유이다.
민간 발전회사의 입장에서는 전력난이 오히려 호재이다. 민간 발전회사는 전력수급의 안정성보다는 전력 가격의 변동에 따른 수익 창출에 주안점을 둔다. 전력난이 가중될수록 단기 전력 공급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막대한 이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익은 전기요금 인상이나 한국전력의 값비싼 전력 구매 대금에서 발생한다. 국민의 세금과 전력난을 대가로 해 민간 자본이 살찌는 구조가 수립된 것이다.
해법은 간단하다. 공공부문 특히 전력을 포함한 에너지 부문의 민영화 정책을 중단하고 통합적인 공공산업구조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은 오히려 정책 실패를 답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 4월 도시가스사업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이 법안은 민간 사업자의 ‘자가소비용’ 천연가스 직수입을 대폭 확대하고 수입된 물량의 국내외 판매를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한국가스공사가 독점하고 있던 천연가스의 도입과 도매 부문에 민간 부문의 진출을 확대하여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효율성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일견 무관한 듯이 보이지만 사실 이 법안은 전력난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전력산업 민영화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직수입을 통해 민간 발전사업자는 막대한 이윤을 보장받을 수 있다.
천연가스는 개발과 탐사로부터 생산과 판매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천연가스의 수급과 가격 안정성을 위해서는 한국가스공사와 같이 공신력 있는 업체를 통한 천연가스 장기 도입 계약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직수입제도를 통해 민간 사업자가 단기 계약의 형태로 천연가스를 도입하게 되면서 천연가스의 수급 구조가 장기 계약에서 중단기 계약 위주로 전환되고 있다. 이는 단기적인 수급 조절에서 현물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을 상승시킨다. 장기 계약보다 훨씬 비싼 가격을 지급해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 비용은 천연가스 수급 책임을 맡고 있는 한국가스공사가 진다. 결국은 국민의 부담이다.
천연가스 직수입자가 발전 사업뿐만 아니라 소매 도시가스업까지 겸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단기적으로라도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할 경우 민간 사업자는 천연가스 구매를 중단하거나 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거나 아니면 발전 단가를 높일 수 있다. 그것도 아니면 소매 부문으로 가격을 이전시켜 도시가스요금을 상승시킬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민간 사업자가 손해를 보는 일은 없다. 그러나 그 대가로 국민은 전력난을 겪거나 전기·가스 요금의 인상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문제가 민영화 정책에 따른 통합적인 에너지 수급조절 기능의 상실에서 비롯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무수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민영화 정책은 맹목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그 결과 에너지 대란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고 국민이 민간 대기업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는 구조가 수립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민생경제를 강조하면서 등장했다. 이제 국민의 민생인지 대기업의 이윤인지 결정할 차례다.
배병인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