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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국정원, 국민의 정보기관으로 환골탈태해야 / 박종수 |
대학생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다시 촛불을 들었다. 국정원의 정치관여에 대한 평화적 항거다. 정보기관의 특성상 음지에서 일해야 할 국정원이 연일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내리는 현실이 안타깝다. 처음에는 여직원 한 명의 개인적 관심사 정도로 축소·은폐되었다. 그러나 원세훈 전 원장의 퇴진과 함께 60여명의 심리전국 직원이 투입된 정황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1만여명의 직원 중에 나머지 9900여명은 무얼 하고 있었나? 만일 심리전국 직원뿐만 아니라 전체 직원이 조직적으로 관여했다면 국정원은 더는 존립가치가 없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무엇보다도 국정원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조직이다. 당연히 국민에게 봉사하고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사건 전모가 국민 앞에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져야 할 이유다. 이를 위해 반드시 국정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행여 여야간 정치적 거래로 유야무야된다면 더 큰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사실 국정원은 정권안보의 시녀라는 태생적 오명을 안고 있다. 군정 종식 이후 정권이 바뀌고 수장이 교체될 때마다 개혁의 목소리는 높았으나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정치보복의 악순환만이 반복되어 왔다. 인원, 예산 및 시설규모에 비해 효율성이 매우 낮은 집단으로 전락했다. 특히 지난 엠비 정권 때는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전문 정보기관으로 격상되기는커녕 정권안보의 전위기관으로 퇴행했다.
국가정보원법 9조는 ‘국내정치 관여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절대다수의 직원들은 이 조항을 금과옥조로 여긴다. 정치인이나 기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조차 금기시한다. 그러나 원장과 소수 측근들은 예외다. 성실과 능력보다는 학연·지연·혈연이 우선시되는 조직문화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이러한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원장의 제왕적 지위가 있다. 원장의 지시는 적어도 국정원 안에서는 모든 법에 우선한다.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는 특수성 때문에 원장이 조직을 농단해도 제어할 장치가 없다. 군대조직보다도 더 경직되어 있다. 이러한 맹종문화 때문에 누가 원장으로 부임하더라도 조직 장악이 쉽다. 여직원의 대선개입이 원장의 친필지시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것은 새삼 놀랄 일이 아니다. 원장 1인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직원들이 원장의 부당한 지시에 불응할 수 있는 법적 보호막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국정원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 공룡같이 비대해진 조직을 경량화해야 한다. 갑의 횡포가 재벌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재벌 권력기관의 횡포는 국민들의 정신세계까지 유린한다. 옛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는 공포의 절대권력을 행사했으나 수장이 쿠데타의 주범이 됨으로써 여러 조각으로 쪼개졌다. 미국의 정보기관도 국가정보국(DNI),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국가안보국(NSA) 등 수개의 부문정보기관으로 나뉘어 전문성 확보와 함께 상호 견제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처럼 정보기관의 슬림화는 글로벌 시대의 대세다. 그런데 국정원은 전신인 중앙정보부 수장의 반란에도 불구하고 그 조직체계는 30여년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국정원은 여전히 연간 9000억원의 예산과 1만여명의 인력을 갖춘 막강조직이다. 국내외 구석구석까지 힘이 뻗치고 대북업무까지 망라하는 ‘작은 정부’나 다름없다. 현재의 조직체계는 수장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 전횡될 수 있고 내부의 부당거래도 가능한 구조다. 최소한 국내부서와 국외부서(대북 포함)만이라도 분리되어야 한다.
정권은 유한하나 국가는 영원하다. 국정원은 ‘오직 조국을 위해’ 음지에서 일하는 국민의 정보기관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부 국정원 직원의 대선개입은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져야 한다. 사건 발생 후 반년이 경과하면서 이미 증거인멸의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국정조사가 더욱 필요하다.
박종수 글로벌경제평화연구소 이사장·중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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