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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외곽 담장 설치에 대하여 / 이강원 |
준공을 목전에 두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담장 설치 문제로 불필요한 소모전이 이어지고 있다. 30여년 동안 멀리 과천에 위치하여 열악한 접근성으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울의 심장부인 기무사 터로 이전하는 이 일은 우리 문화계뿐 아니라 온 국민의 숙원사업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모든 선진국의 현대미술관이 수도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국가의 랜드마크이자 아이콘 구실뿐 아니라 주요 관광산업의 동력으로서의 구실도 수행하고 있다. 이에는 빼어난 소장품, 건물의 아름다움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관람객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모두 담장 없는 개방형 모델을 택했다는 점이다. 이는 미술관, 특히 현대미술관이 갖추어야 할 필수 요건이다.
파리의 퐁피두 미술관, 런던의 테이트모던, 뉴욕현대미술관(MOMA), 암스테르담의 스테델레이크 현대미술관,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현대미술관과 빌바오 미술관 등 한 곳도 예외 없이 담장이 없다. 담장으로 둘러싸인 미술관은 상식을 벗어나는 웃음거리가 될 정도다. 당연히 우리 현대미술관도 ‘열린 미술관’을 지향하고 그간 공사를 진행해왔다.
물론 국가마다 그곳의 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대미술관의 특수한 입지적 상황(경복궁과 이웃하는 역사적 장소)에 따라 역사적 가치가 있는 흔적은 소중히 간직해야 하지만 문화적·역사적 가치도 없는 담장을 남겨 놓아야 한다는 일부 문화재 지킴이의 의견은 현실성도 없고 설득력도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담장을 설치함으로써 우리나라 600년의 정취가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북촌과 현대미술관의 문화적·역사적 맥을 단절시키는 것은 우리만의 귀중한 가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현대미술관은 도서관·극장·공연장 등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예정인데 관람객과 사이에 담장이 있다면 시각적·심리적으로 큰 위화감을 조성할 것이다.
그동안 주민과의 공청회를 통해 중지가 이루어진 대로 기존의 담장은 아예 없애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불가피한 경우 1~1.5m 정도의 야트막한 담장을 몇 군데 상징적으로 남겨 놓는 것에 그쳐야 한다. 기무사가 자신의 보안을 위해 설치한 담장을 현대미술관이 그대로 떠안고 간다면 우리의 새 문화명소는 불구의 모습으로 미술관을 찾는 국내외 관람객은 물론이고 온 국민에게 천추의 한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강원 세계장신구박물관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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