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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22 19:27 수정 : 2013.07.22 19:27

인문학에서는 ‘다른 언어로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그 언어의 기반인 문화와 전통에 동화되는 것이고 동시에 자신의 언어를 소홀히 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와 전통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다른 나라 언어로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것과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고 익히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우리나라 사람이 무엇인가를 외국어로 배운다는 것은 피와 살갗은 한국인이되 생각과 가치관이 정체불명인 사람들로 바뀌어 간다는 것과 같다.

독선적인 행태로 물의를 일으켰던 한국과학기술원 전 총장 서남표는 지나친 영어 열풍이라는 우리 사회의 뒤틀림을 빌미 삼아 영어로 배우고 가르치도록 강요하였다. 이는 우리 겨레의 얼과 넋을 어지럽히고 정체성을 망가뜨린 것이며,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뛰어난 인재들의 가치관을 서양인들의 입맛에 맞게 교묘히 바꾼 것이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원 강성모 총장은 이를 바로잡을 중대한 책무를 맡은 셈인데도, 개혁 후퇴라고 비칠지 모른다며 도외시하고 있는 듯하다.

말과 글은, 역사와 더불어, 한겨레의 정체성을 지키고 이어 나아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말을 홀대하는, 아니 천대하는 추세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도리어 부추기는 것이 어찌 바른 일이겠는가? 이 세상에서 어느 제대로 된 나라, 제대로 된 대학교에서 자기 나라 인재를 다른 나라 말로, 그것도 강제로, 가르치고 키우고 있는가? 숨어서야 겨우 우리말로 배우고 가르칠 수밖에 없었던 아픈 역사를 잊은 것인가?

배움과 가르침의 기본은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이 흥겹게 자발적으로 그리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배우고 가르칠 때 다른 나라 말을 쓰라고 강요받는다면, 제대로 신명나게 배우고 가르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구에게든 가르칠 말을 지정하여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특정 외국어로 강의해야 한다는 ‘강제’ 조항은 헌법에 명시된 자유로운 의사 표명권에 위배될 소지가 있으며, 교권을 침해하고 학문의 자유를 막는 것일 수 있다.

가르치고 키우는 일에는 지식의 전달만이 아니라, ‘교감’이라는 요소가 매우 중요하다. 가슴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가 우리말이고 우리글일 때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더욱더 깊이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 학생이 우리 말과 글을 배워서라도 우리나라 교수의 우리 말글 강의를 들으려 하게끔 만드는 것이 마땅히 나아갈 길이고 또 진정으로 바른 국제화일 것이다. 영어가 필요하니 (반드시) 영어로 가르친다는 논리는 마치 돈이 필요하니 돈을 (어떻게든) 벌면 된다는 생각과 다름없다.

요컨대, 우리나라 인재를 다른 나라 말로 가르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크나큰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다. 먼 뒷날의 역사적 평가를 염두에 두고 이런 문제를 인식하여 ‘우리 말글 강의 원칙(외국어 예외 인정)’을 천명하는 것이 대한민국과 한겨레의 역사에 남을 오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방안이다.

송익호 한국과학기술원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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