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07.24 19:10 수정 : 2013.07.24 19:10

최근 누리꾼들 간에 벌어진 보수, 진보 논쟁이 살인 사건으로 비화된 ‘부산 칼부림 사건’은 충격적이다. 어쩌다 이런 참사가 일어났단 말인가? 사인 간에 벌어진 사건이지만 그동안 이념 갈등을 조장함으로써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을 민주적으로 통합시켜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을 잊고 사회 지도층으로서 솔선수범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치권과 고위 공직자들도 그 책임을 면할 수가 없다. 정치권의 전매특허인 이념 논쟁이 일반 시민의 생명까지 빼앗는 살상 무기로 확대되었다는 것은 공화국의 갈등과 분열상이 얼마나 심각한 위기 상태에 봉착했는가를 암시한다.

우선 정치 엘리트와 고위 공직자의 자기반성이 요구된다.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과 대통령 대화록 공개 사건은 권력이 남용된 공화국의 부패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여야 정치권의 숙의 없는 ‘엔엘엘(NLL) 대화록 공개 합의’도 정쟁을 위해 국익을 손상시키는 소탐대실의 나쁜 선례다. 외교적인 기밀문서를 불법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대외 신인도와 국격을 떨어뜨린다. 부패는 사익을 위해 공공선을 저버리는 행위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국가보다 국정원의 조직 이익을 먼저 챙기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남재준 국정원장의 실종된 국가관과 윤리관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공화국이라는 운명 공동체는 공공선과 국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각 당파들의 사익을 절제시킴으로써, 계급 간의 타협과 화해를 도모할 때 번영할 수 있다. 공화국의 대통령이 지녀야 할 최고의 덕목은 사회적 균열과 파당들의 존재적 기반에서 따라오는 계급투쟁이 공동체의 공멸과 공화국의 부정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하는 견제와 균형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엔엘엘을 포기했다”고 주장하며 “엔엘엘 회의록 공개는 국가 안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강변한 국정원 대변인 명의의 7월10일치 보도자료는 ‘평범한 악’에 가깝다. 평범한 악이란 말은 미국의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가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도운 혐의로 체포된 카를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면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남긴 교훈이다. 그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뿔 달리고 정신이 이상한 ‘악마’가 아니라,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조직과 상부가 시키는 일을 근면하고 충성심 있게 해내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사람을 죽이는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생각할 줄 모르는 무사유의 행태를 평범한 악으로 표현했다. 인터넷 이념 논쟁이 살인으로 비화된 일도 그리고 민주공화국의 정신을 망각한 채 정치권과 공직자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진영 논리와 부패도 ‘평범한 악’의 전형이다. 정치 엘리트가 유권자의 이념적 간극보다 더 큰 이념 갈등을 생산하여 공동체를 갈등과 분열로 몰아넣는 것이 평범한 악의 본질이다. 민주 없는 공화국은 공허하고 공화국 없는 민주는 위험하다. 정치 엘리트가 균형감을 갖고 평범한 악행을 줄일 때다. 대통령도 권력을 제대로 사용해야 한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