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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29 18:22 수정 : 2013.07.29 18:22

너도나도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부가 ‘창조경제’를 국정 기조로 내세운 이후,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창의력 있는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요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대학들은 ‘기’를 살려주고 ‘끼’를 키워주는 교육으로 창조경제에 이바지하자는 구호를 민활하게 부르짖는다. 그러나 이 지극히 옳은 주장을 반기기 전에 창의성이라는 말의 정체를 한번쯤 따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물어보자. 이제까지 남들이 하지 못한 생각을 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창의성인가? 그리하여 창의성이란 나만의 가치를 창출하여 결과적으로 국가의 창조경제에 이바지할 수도 있는, 그런 기특한 능력을 말하는가? 엄격히 말해, 이것은 기발함이지 창의성이 아니다. 창의성을 그저 이렇게 기발하고 분방한 개성 정도로 이해한다면, 대학 교육의 핵심이 창의성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에서 오히려 무책임한 기만이나 허언이기 쉽다. 현실에서 정녕 필요한 것은 나만의 새로운 것을 만들거나 갖겠다는 헛된 독창의 관념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 수준을 객관적으로 반성하고 자신의 지식이 영향받고 있는 주류적 사고(상식)의 문제점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소박하지만 진지한 이 주체적 사고능력, 곧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지성의 보편적 덕목을 갖추는 일은, 단순히 ‘기’를 살려주는 일 정도로 치부될 수도 없겠거니와, ‘끼’를 마음껏 발산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창의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근본적 의미에서, 창의성은 물음의 능력이다. 순수한 호기심과 궁금증, 그것이 창의성의 시작이자 끝이다. 남이 알려준 어떤 전제에도 만족하지 않고 모든 것에 계속해서 질문할 수 있는 마음의 가려움이 창의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상에 ‘당연한 것’이란 아무것도 없음을 예민하게 깨달아야 한다. 호기심은 제도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니 제도로서의 경쟁을 거쳐 대학에 들어와, 학점과 스펙과 취업이라는 지상 목표를 부여받은 대학생들에게 제도(틀)에 갇히지 않는 호기심과 상상력을 가지라는 말은 사치가 아닐 수 없다. 솔직히 취업 경쟁의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 연예인 가십 기사를 읽는 말초적 호기심은 가지되, 역사나 철학에 관한 교양 고전은 언감생심이려니와 조금 복잡해 보이는 사회문제에 대한 신문 칼럼조차 멀리하는 것이 요즘 대학생의 적나라한 모습 아닌가. 그러나 고백의 어조로 말하거니와 이것은 그대들의 탓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입시와 취업이라는 제도적 경쟁에 필요하지 않은 관심, 곧 ‘필요하지 않은 호기심’은 뒤로 치워두라고 이 사회가 그대들에게 줄곧 말해왔으니까 말이다. 부끄럽지만 이것은 대학도 마찬가지여서, 다들 모집 경쟁을 위해 ‘잘 가르치는 대학’이라는 현란한 광고는 내걸되 정작 무엇을 잘 가르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조차 없는 것이 요즘 대학의 모습 아닌가.

창의성을 키운다는 것, 그것은 방금 말한 이러한 상황을 혁파한다는 것이다. ‘필요한 호기심’은 참된 호기심이 아니다.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강요하지 않는 것들, 필요치 않아 보이는 것들을 즐겨 해라. 필요가 아니라 자유에 관심을 가져라. 명심하라. 진정 소중한 것은 다른 어떤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다. 학점과 스펙과 취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대학 생활에 투신하라. 실로 궁금하지 않은가, 내가 과연 누구인지? 그대는 미정의 가능성이 들끓는 용광로이니, 그 누구도 대신 관심 가져주지 않는 그대의 정체에 스스로 냉철히 눈을 돌려라. 그 미정의 정체에서 필연코 비롯되는 불안과 위험과 방황을 감내하고 오히려 즐기는 것이 창의적 삶의 미룰 수 없는 시작이다. 기성세대, 아니 기득세대가 외쳐대는 ‘경쟁력을 키우자’는 구호에 주눅 들지 말고-그들이 요즘 말하는 창의력은 기실 이 경쟁력이라는 유구한 수사의 윤색에 지나지 않는다-도대체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경쟁인지를, 더 정확히 하자면 도대체 그들이 나에게 왜 자꾸 그런 말을 외쳐대는지를 철저하게 의심하고 회의하라. 패기는 이럴 때 쓰는 것이다.

경쟁력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창조라는 말을 경제와도 과학과도 결합시키는 시대다. 창조경제와 창조과학의 시대, 창조마저 물신이 된 시대가 그대에게 창의성을 요구한다. 걷어치우지 않아도 좋으니, 이 창조의 굿판을 이탈하라. 창조는 의욕이 아니라 자유의 열매다. 그리고 자유는 본래 궁핍이자 사치다. 어느 하나 포기함 없이 이 둘을 모두 끌어안으려는 공정한 정신을 가져라. 창조의 성화에 끼어들어 같은 말 슬쩍 등 떠밀며 늘어놓느니, 대학 교육의 핵심은 창의성 교육이다.

김율 대구가톨릭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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