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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학술림에 국립공원을 지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 원종명 |
지리산과 백운산 일대는 101년 전부터 대학숲, 곧 학술림으로 지정되었다. 해방 이후 서울대가 지금까지 이곳 학술림의 관리 주체로서 약 67년 동안 해당 지역에서 산림에 관한 각종 시험연구와 교육활동을 수행해 왔다. 이곳 학술림은 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국토관리에 중요한 산림정책과 연구를 이끌어 나갈 학생들이 산림자원 및 자연보전에 관한 실습을 진행하고 있는 곳일 뿐만 아니라 산림의 생물다양성 보전과 산림경영에 필요한 과학기술이 가장 먼저 시험되는 곳이다. 산촌을 포함한 지역사회의 경제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활동과 다양한 연령층의 국민들에게 산림의 중요성을 알리는 사회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숲 가운데 일부는 1967년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일반국민의 관광이 가능한 공원이 되었다. 공원으로 개방된 이후 지리산 학술림은 학술적 이용에 많은 제한을 받고 있다. 공개된 공원에서는 학술연구를 위한 실험 처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학술림은 산림과학과 생태학, 환경과학 등의 연구와 교육을 수행하는 실험장이다. 산림생태계의 다양한 속성을 이해하고 장기적인 변화를 예측하려면 숲에서 발생하는 자연적·인위적 교란의 양상과 그에 따른 변화를 관측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테면 울창한 숲에서 골라베기를 하여 식물과 동물, 미생물의 종 구성이나 생장의 변화를 관찰하고, 숲바닥의 식생을 제거하여 새로운 수종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거나, 숲지붕에 숲틈을 만들어 빛 환경을 조절하고, 모두베기를 하거나 인공산불을 놓아 나지에서 자연적인 복원 과정을 조사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연구는 우리 산림을 잘 가꾸고 보존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연구이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전지구적인 환경·기후변화와 관련하여, 폭우로 인한 산사태 등의 산림 동태, 수문관측, 기상관측 등에 대한 장기생태계 모니터링 연구는 수십년간 이러한 연구가 지속되어온 곳에서 계속될 때 의미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장기간 연구가 지속된 학술림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산림의 형태를 변화시킬 수도 있는 수종 변화, 산사태 복원 등의 연구를 하려면 산림 관리의 자율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산림의 탄소흡수량과 물질순환량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나무를 베고 뿌리까지 캐내어 측정해야만 하는데, 이를 계획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학술림이다. 국립공원에서는 이런 연구가 불가능하다.
일부 지역 주민이나 지자체와 정치권에서는 서울대 남부학술림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도 연구와 교육에 지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립공원은 인간 간섭을 가능한 한 배제함으로써 자연생태계와 자연 및 문화경관 등을 보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만약 백운산 학술림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다면, 자연생태계에 대한 퇴행천이와 진행천이를 이용한 다양한 자연환경 관리와 실험적 경영활동이 불가능하고 이에 대한 연구와 교육도 크게 제약을 받게 될 것이 명백하다. 학술림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산림연구를 직접적으로 제약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국토의 64%가 산림인 우리나라에서 산림을 연구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학술적 가치가 큰 학술림을 해제하여 이미 21개나 지정되어 있는 국립공원에 또 하나를 추가하는 것이 국토관리의 옳은 방향인지 묻고 싶다.
자연공원법에서는 국립공원을 지정하기 위한 조건으로, 1) 자연생태계의 보전상태가 양호하거나 멸종위기야생동식물·천연기념물·보호야생동식물 등이 서식할 것, 2) 자연경관의 보전상태가 양호하여 훼손 또는 오염이 적으며 경관이 수려할 것, 3) 문화재 또는 역사적 유물이 있으며, 자연경관과 조화되어 보전의 가치가 있을 것, 4) 각종 산업개발로 경관이 파괴될 우려가 없을 것, 5) 국토의 보전·이용·관리 측면에서 균형적인 자연공원의 배치가 될 수 있을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대 백운산 학술림은 과거로부터 인공적으로 조성 및 관리되어온 인공림이 많고, 연구와 교육을 위하여 임도가 많이 개설되어 있으며, 구역 안에 문화재 또는 역사적 유물이 없어 국립공원 지정에 합당하지 않은 곳이다. 백년 역사의 전라남도 백운산 서울대 학술림은 학술림으로 존치하여 우리의 산림연구가 지속되도록 해야 한다.
원종명 강원대 산림환경과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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