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31 19:11
수정 : 2013.07.3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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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들이 지난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회의를 지켜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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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이 존폐의 기로에 섰다. 지난 7월25일까지 모두 6차례에 걸쳐 진행된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남북 당국회담은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다음 회담 일정도 잡지 못한 채 끝이 났다. 7월27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성명을 통해 “북한은 지금이라도 재발방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해주기 바란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정부는 … 부득이하게 중대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고 ‘최후통첩’을 하자 한 기업인은 “공단 폐쇄를 기정사실로 하고 명분을 쌓아가기 위한 절차를 거친다는 느낌을 모두 받았다”며 허탈해했다.
개성공단이 과연 어떤 곳인가? 류길재 장관 스스로도 말했듯이 개성공단은 ‘통일의 마중물’일 뿐만 아니라 ‘평화를 위해서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다. 개성공단이 폐쇄된다는 것은 그만큼 통일의 길이 멀어진다는 뜻이고 평화가 더욱 위태로워진다는 의미이다.
개성공단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남북이 대결하고 갈등하는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왔다. 특히 2010년 5·24조치 이후 남북간의 교류협력이 단절되었을 때도 개성공단만은 중단되지 않았고 오히려 생산규모를 확대해왔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상품들은 유럽연합과 중동, 러시아 등으로 수출을 확대하며 우리 중소기업들에 경기침체 속에서도 활로를 마련해주었다.
그런 개성공단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폐쇄될 운명에 처한 것이다. 과연 개성공단 재가동이 불가능할 만큼 남과 북의 이견이 컸을까? 당국회담에서 남북은 이미 개성공단 국제화를 비롯하여 그동안 우리 기업들의 요망사항이었던 통행·통신·통관 등 이른바 ‘3통 문제’에도 의견이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재발방지 대책과 가동중단 원인에 대해 근본적인 시각차를 드러냈다는 점이다. 남쪽은 재발방지를 위해서 북쪽이 근로자 철수와 같은 일방적인 조처를 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인 반면, 북쪽은 남쪽의 ‘정치적 언동과 군사 행위 중단’을 주장함으로써 팽팽히 맞섰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 원인에 대해서도 남은 북이 근로자 철수 등 일방적 조처를 취한 것을 강조하고 있고 북은 최고존엄 모독 등이 근로자 철수의 원인이었다고 보고 있다.
모든 협상에는 상대가 있는 법이고, 그 전제는 ‘인정과 존중’이어야 한다. 개성공단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1991년에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 1조1항 “남과 북은 서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조항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 정신에 따라 북은 개성공단 일방적 철수 금지, 남은 개성공단 운영에 대한 저해행위 금지 등을 서로에게 약속하면 될 것이다.
또 하나 당국은 실제 투자자이며 운영자인 입주 기업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들에게 개성공단은 자식이며 목숨이다. 누가 이들보다 더 절실히 정상화를 원할 것인가. ‘개성공단 비상대책위원회’는 7월30일 성명을 통해 “북쪽은 정치적 언동과 군사적 위협 등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할 수 있다는 입장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면서, 남쪽 정부에 대해서도 “신변안전 보장이나 법 제도 개선 등에서 북쪽이 전향적인 입장을 보인 만큼” 대승적 차원의 합의를 호소했다.
한편 이날 기업인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개성공단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다. 청와대 보고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7월22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완제품 및 원부자재 반출이 완료된 만큼 반출된 제품 활로에 필요한 조처를 취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이날 대통령 발언은 사실과 달랐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시설 점검과 물자 반출을 위해 총 5차례 정도 방북했지만 완제품과 원부자재를 모두 가져오지 못했다. 7월10~19일 사이에 통일부가 승인한 방북 인원은 업체당 평균 3명으로 규모가 큰 기업들은 기계설비 및 물품 점검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개성공단 현장에 100억원대 제품을 그대로 쌓아둔 회사도 있다고 한다. 통일부는 시설점검과 물품반출을 위해 방북 인원을 확대해 달라는 기업들의 요청을 거부했다. 누구를 위한 통일부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다.
시간은 많지 않고, 사태는 복잡해 보이지만 해법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우선 정부 당국은 ‘압박’하면 ‘굴복’할 것이라는 대결주의적 입장에서 벗어나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동시에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을 동반자로 인정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개성공단 ‘재가동’은 ‘선’이고, ‘폐쇄’는 ‘악’이다. 국민들의 관심과 지원, 그리고 남북 당국의 의지와 지혜가 절실한 지금이다.
임수경 민주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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