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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학교에서 감동적인 현대사를 배웠으면 좋겠다 / 김재희 |
“나는 자연인이다!” 얼마 전 수련회 장기자랑 대회에서 한 친구가 춤을 추다가 이 한마디 외침과 함께 교단에서 뛰어내렸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일베 식으로 조롱하는 퍼포먼스다. 이 친구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노 대통령을 싫어한다고 했다. 후에 다른 친구들과 이에 대해 토론을 해봤는데,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집이 굉장히 잘산다고 알려진 아이들은 하나같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싫어하는 것이다. 그 이유가 궁금해 꼬치꼬치 캐물어 봤지만, 정확한 근거를 대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저 “아빠·엄마가 그렇게 얘기하니까”라고 답하는 아이들이 열에 일고여덟이었다. 부모의 정치관이 자녀의 가치관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 원인으로는 홈스쿨링에 가까운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를 들 수 있다. 과거와 달리 한 가구의 자녀 수는 1~2명인데다 교육열은 높으니, 부모와 자식 간에 정치나 사회에 대한 얘기가 자연스레 나오는 것이다. 반면 학교 교육은 매우 부실하다.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한국사는 289시간 수업을 한다. 그렇지만 현대사는 찬밥 신세다. 현대사가 교육과정 끄트머리에 존재하기에 빠뜨리기 쉽고, 선생님 또한 예민한 내용을 다루기가 껄끄럽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만 해도 1920년대 일제의 정책 부분까지만 배우고 현대사는 들어가지도 못한 채 학기를 마쳤다. 이런 상황이니 대부분의 학생들은 부모의 몇마디 말에 의존해 역사와 정치에 눈을 뜬다.
하지만 이는 위험하다. 학생이 너무 극단적인 사고를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부모의 가치관이 자식에게 전승될수록 균형 감각은 사라지고 전투적이고 자극적인 생각만 남는다. 2009년까지 <한국방송>에서 방송된 <가족오락관>이란 프로가 있다. 그 안에 ‘고요 속의 외침’이라는 코너가 있는데, 팀별로 나뉘어 헤드폰을 쓰고 제시어를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는 게임이다. 웃음 포인트는 제시어가 전달될수록 심하게 뒤틀려 처음 것과는 전혀 엉뚱한 단어로 변해가는 과정에 있다. 군고구마가 국군방송이 되어 끝났을 때 난 배꼽을 잡고 웃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 속 이야기라면 웃을 일이 아니다. 변질된 가치관들의 충돌은 사회적 혼란과 마찰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가치관이 왜곡되며 전달되다 보면 애초에 무얼 가지고 대립하기 시작했는지조차 잊을 수 있다. 조선시대 붕당정치의 후반기를 보면 벼슬아치들은 감투를 놓고 편을 갈라 피비린내 나게 싸운다. 애초의 주이론과 주기론을 둘러싼 철학적 논쟁은 온데간데없다. 이는 결코 퇴계나 율곡이 원하던 바가 아니었을 것이다.
최근 정부가 한국사를 수능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번 수능에서 한국사를 택한 고3 수험생인 나로서는 기쁜 소식이다. 하지만 현대사가 여전히 한국사의 변방 취급만 받는다면, 그 의의가 쇠퇴하고 말 것이다. 현대사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만들어진 과정이다. 그것을 이해해야 현재를 이해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판단할 수 있다. 현대사의 비중을 높이는 방법을 함께 찾아봐야 한다.
아울러 지금처럼 교과서나 <교육방송> 교재를 앞세운 수능 공부로는 모자란다. 역사를 이해하고 공감하기에는 흰 종이에 쓰인 검은 글씨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가 앞장서서 교육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영화·다큐멘터리·게임 등으로 흥미를 유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일제시대 독립투사들, 산업화 시대의 역군들, 민주화 투사들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현대사를 죽어 있는 과목이 아닌 감동적인 이야기로 만드는 게 수능 필수 과목 지정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다.
김재희 서울 강서고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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