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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15 19:04 수정 : 2013.08.15 19:04

해마다 8월이면 온 나라가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 경축 분위기에 휩싸인다. 대한민국 광복의 역사가 민족의 기쁨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겐 메마른 구호에 불과할 수도 있다. 바로 사할린 영주귀국자(이하 사할린 동포)들의 이야기다.

이름만큼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사할린섬의 비극은 100년 전 우리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일본의 식민통치 시절부터 시작된다. 일제 강점기인 1938년 일본은 중국 침략과 태평양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국가전시체제에 돌입하고, 우리나라의 인적·물적 자원을 약탈하기 위해 국가총동원령을 선포하게 된다. 이때부터 일본은 얼음의 땅 사할린으로 조선인을 집단 강제 동원하여 탄광·비행장·도로·철도 등 군수시설 건설 현장에서 고역을 치르게 했다. 사할린으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7만여명에 이르며, 그중에서 절반 가까이가 극심한 노동을 이기지 못하고 타국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1945년 종전과 함께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았지만 강제 동원된 4만여명의 조선인과 그 후손들은 일본 정부의 귀환 불허 및 일방적인 국적 박탈 조처로 사할린섬에 방치되어 역사의 기억에서 점차 멀어져 갔다. 이후 1990년 한·소(현재의 러시아) 수교 이래 한·일 적십자사가 주축이 되어 사할린 한인 조기귀국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1997년부터 2013년까지 2900명의 사할린 한인 1세와 2세들이 전국 19개 지역에 뿔뿔이 흩어져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백발의 노인이 되어 조국의 품 안에 들어온 사할린 동포들의 삶은 과연 행복해졌을까? 정부와 지자체가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임대아파트를 제공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거해 수급자로 지정하여 생계비를 지급하고, 별도로 특별생계비를 지원하는 등 다각적인 정착 지원정책을 추진하고 있다지만 실제 그들의 삶은 그리 녹록지가 않다.

해가 갈수록 한국에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들의 수는 감소하고 있다. 각종 암과 고령으로 인한 질환으로 세상을 떠나는 동포들이 점점 늘기 때문이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고향에 와서 얼마 살아보지도 못하고 병을 얻어 사망하거나 병상에서 여생을 마감하는 것은 여간 허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를 지켜보는 사할린 동포들은 술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2012년에는 충북 청원군에서 사할린 동포 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벌어졌다. 자살 원인은 바로 우울증이다. 사할린 동포들은 고령인데다가 마땅한 직업도 갖지 못하고, 한 아파트 단지에서 동포들끼리 집단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 외에는 이웃과의 소통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같은 아파트 안에 있는 경로당에서 이웃 주민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집 안에 있거나 몇몇이 슈퍼마켓에 둘러앉아 각자내기로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필자가 노인복지관에 일하면서 2년 동안 지역 사할린 동포들의 삶을 지켜본 바로는 우리 사회가 그들을 ‘왕따’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복지관이나 일부 봉사단체 이외에는 우리 지역에 사할린 동포가 사는지, 또 그들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살고 있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정부에서 지급하는 생계비나 의료비 지원도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이 어디 빵만으로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꿈에서도 그리던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정서적 지원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나라 잃은 설움과 함께 검은 대륙으로 끌려갔다 70년 만에 얼음의 땅에서 살아 돌아온 그들을 우리는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어야 한다. 우리가 그들을 보살피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아직 완전히 해방되지 않은 것이다.

송장희 청원군노인복지관 복지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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