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08.26 18:09 수정 : 2013.08.26 18:09

지난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수장학회와 <문화방송>(MBC) 간부들이 정수장학회의 언론사 지분 매각을 비밀리에 논의하는 대화 내용을 보도한 <한겨레> 최성진 기자에 대한 1심 판결이 지난 20일 나왔다. 법원은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이던 대화 내용을 ‘녹음’해 ‘보도’한 행위에 대해서는 무죄, 그러나 대화 내용을 ‘청취’한 부분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단했다. 법원이 동일한 행위를 굳이 녹음·보도와 청취 행위로 나누어 후자에 대해서만 따로 유죄로 판단한 것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더 큰 문제는 청취 행위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대목에서 법원이 스스로 심각한 법리적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이번 판결의 논리 전개를 볼 때, 법원은 최 기자의 지분매각 대화 녹음 행위는 ‘부작위’, 청취 행위는 ‘작위’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는데,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이다.

형법상 적극적 행위를 뜻하는 작위와 이와 반대되는 부작위는 범죄 성립 여부를 따질 때 매우 중요하게 구분되는 개념이다. 특히 ‘작위의 형식으로 형법에 규정돼 있는 구성요건(퇴거불응죄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한 대부분의 죄가 이에 해당하며, 이 사건에 적용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죄도 같다)을 부작위에 의해 실현하는 범죄’를 의미하는 ‘부진정부작위범’의 경우, 보통은 죄를 범한 것으로 보기 쉽지 않은 부작위를 작위와 같은 정도의 범죄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곧 다른 범죄와는 달리 법익 침해의 결과 발생을 방지할 보증인으로서의 지위 내지 작위 의무 등의 특수한 요건을 충족해야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이 사건 대화가 시작될 무렵 적극적으로 이를 녹음하기 위한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피고인과 최필립의 대화 당시부터 작동하고 있었던 피고인 스마트폰의 통화 및 녹음 기능을 이 사건 대화 중 소극적으로 중단하지 아니하였을 뿐이어서, 피고인의 이 사건 녹음 행위는 부작위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된다. … 작위에 의한 범행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했다. 법원도 녹음 행위에 대해서는 최 기자가 이미 진행되던 휴대전화의 통화·녹음 기능을 중단하지 않은 부작위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본 뒤, 최 기자에게 이 기능을 중단해야 할 작위 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청취 행위는 녹음 행위와 분리해 작위로 보고, 그 결과 녹음 행위와는 달리 작위 의무 존부 등을 검토하지도 않은 채 유죄 판단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녹음 행위가 부작위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본 논거는 청취 행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인정돼야 한다. ‘스마트폰의 통화·녹음 기능 작동(녹음)’은 ‘청각 집중(청취)’에, ‘스마트폰의 통화·녹음 기능 중단(녹음 중단)은 ‘청각 집중 중단(청취 중단)’에 조응해 달리 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청취 행위도 녹음 행위처럼 부작위에 의한 것으로 볼 경우, 역시 최 기자에게 청취를 중단해야 할 작위 의무 등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무죄 선고가 내려졌어야 마땅하다.

법원의 이번 판결처럼 최 기자의 비밀회동 대화 청취 행위를 작위로 본다면, 대체 어느 시점에 직전 최필립 당시 정수장학회 이사장과의 취재통화 청취 행위가 종결되고 새로이 비밀회동 대화 청취 행위가 시작된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도 필요하다. 최 기자는 지난해 10월8일 오후 정수장학회 지분매각 논의를 위한 비밀회동 직전에 최 이사장과 취재 목적의 휴대전화 통화를 했다. 이때 최 이사장의 음성을 청취한 행위는 적법함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최 기자의 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이와 구분해 범죄 성립 여부를 검토할 별도의 청취 행위를 확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번 판결은 직전 최 이사장과의 취재통화 청취 행위와 비밀회동 대화 청취 행위의 구분 시점 및 기준을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다만 최 기자가 취재통화에 이어 전화를 끊지 않은 채 청취를 계속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최 기자와 최필립 이사장 사이에) 취재통화를 마친다는 뜻의 인사말이 오간 것을 앞뒤로 청취 행위를 구분한 듯하다.

그런데 이렇게 통화 내용에 따라 일련의 통화 청취 행위가 쪼개어진다고 보는 것은 너무나 불명확하고 자의적인 행위 구분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일상에서 통화 종료 취지의 인사말 뒤에도 바로 마음을 바꿔 통화를 중단하지 않고 통화를 계속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상대보다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거나 나이가 적은 통화자는 상대가 마음을 바꿔 다시 통화하려는 경우를 대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먼저 통화를 종료하면 상대가 자신을 건방지다고 여길 수도 있으므로 상대가 전화를 끊었음을 확인할 때까지 통화 청취 행위를 계속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번 판결의 기준상, 위와 같은 경우 일련의 통화 청취 행위는 도대체 쪼개어진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닌가.

또한 설령 이번 판결처럼 직전 취재통화 청취 행위로부터 구분·확정된 작위로서의 비밀회동 대화 청취 행위가 존재했다고 보더라도, 과연 최 기자에게 통비법 위반죄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위 비밀회동 대화 청취 행위 시작 순간 최 기자는 24일치 한겨레 기사에서 밝힌 것처럼 “취재원이자 연장자인 최 이사장에 앞서 냉큼 전화를 끊어버릴 수는 없었다. 가만히 숨을 고르며 그가 먼저 통화종료 버튼을 누를 때까지 기다렸다”는 것이므로,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청취하겠다’는 통비법 위반죄의 고의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법원의 이번 판결이 그나마 검찰의 무리한 기소 내용을 일부만 받아들여 최 기자의 녹음·보도 행위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지만, 논리적 일관성과 합리성을 결여한 채 타협적인 유죄의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은 매우 아쉽기 그지없다.

이강혁 변호사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