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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28 19:03 수정 : 2013.08.28 19:03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문제가 정치권에서는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데 반해, 종교계와 일반 시민들의 규탄선언과 집회는 날로 확산되는 추세다. 군 단위로는 전국 최초로 국정원을 규탄하는 시국회의를 결성한 전북 장수군의 사례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지난 23일 현재 2만명 남짓 되는 전체 군민의 1%가 넘는 233명이 시국선언문에 서명했다. 현실적으로 성인들만 서명을 하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성인 인구 대비 서명 비율은 더 높아진다. 겨우 보름여 만에 이 정도로 시골 군민들의 호응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개적인 서명운동은 이번주부터 장터와 농협 앞에서 진행될 것이고 지금까지는 알음알음으로 이웃 간에 진행됐을 뿐이다.

더구나 장수군민들의 시국선언 서명은 서명운동 사상 유례가 없는 유료(?) 서명이다. 허수를 빼고 참여의 순도를 높이기 위해 서명자는 의무적으로 1000원 이상의 성금을 내도록 했는데 8월6일에 결성된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장수군민 시국회의’는 현재까지 226만1000원을 모금했다.

시국회의에 참가한 10개 단체가 낸 65만원을 빼면 시민모금액이 161만원인 셈이니 성금 열의가 만만치 않다 할 것이다. 뻔히 얼굴을 아는 작은 고을에서는 자기 이름 석 자 밝히는 것도 익명성이 보장되는 대도시와 달리 쉽지 않은 일이다. 무슨 경품 추첨 서명도 아니고 예민한 정치권력 문제를 다루는 서명은 더욱 그렇다. 하물며 돈까지 내는 서명임에랴.

유료 서명의 반응이 어떨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지만 결과는 놀랍다. 새로운 사실은, 지갑을 여는 사람들은 갑자기 말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돈을 내면 입도 열고 귀도 열고 발걸음은 집회장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농부인 시골 사람들을 국정원 규탄 서명으로 이끄는 힘은 무엇인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은 불씨에 불과하다. 거듭되는 거짓말과 해괴한 논리로 진실을 덮으려 하는 집권세력이 일을 키우고 있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때 국정원을 이용한 적도 없고 어떤 도움도 받은 적이 없다면서 정쟁을 중단하고 민생을 챙기자고 촉구한다.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데 대통령과 집권세력만 모르고 있는 꼴이다.

장수군민들의 시국선언문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국정원의 개혁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삶 속에서의 민주주의의 완성을 추구한다. 촛불이 지키고자 하는 민주주의를 마을과 지역에서 완성하고자 한다. 가령 이런 것이다.

장수에서 서울 가는 버스는 하루에 4대뿐이다. 서울 약속 시간이 잘 맞지 않으면 부득이하게 전주로 나가거나 육십령을 넘어 경남 함양군 안의면에서 버스를 탄다. 그러면서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장수에서 서울남부터미널까지는 3시간40분이나 걸린다. 거리는 얼마나 될까? 정확히 243.65㎞다. 버스 요금은 1만9600원이다. 그런데 안의에서 서울까지 요금이 1만7200원이고 거리는 261.2㎞이다. 장수보다 20㎞ 남짓 멀다. 거리는 멀고 요금은 싸다. 전주는 더하다. 거리는 200㎞인데 요금은 1만1600원이니 장수는 전주보다 30% 이상 버스 요금이 더 비싸다. 이것을 우리는 민주주의라 부를 수 없다.

우리가 촛불을 드는 것은 국정원의 부당한 대선개입에 항의하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발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가 요구하는 민주주의라는 것은 추상적·이론적 민주주의가 아니다. 생활 속 주민주권의 완성을 추구한다.

서울시민은 끝에서 끝까지 100리를 가도 1100원이면 된다. 장수군민은 장계면 오동리에서 장수 수남초등학교까지 19㎞를 가는 데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3500원을 내야 한다. 환승제도가 없는 이것도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드는 촛불은 행정과 교통, 건강과 교육 등 장수군민의 모든 생활 분야가 민주화되기를 갈망한다.

장수군 논개 생가지 단아정에 버젓이 걸려 있는 12·12 군사반란의 수괴, 민주주의의 파괴자, 광주학살의 책임자인 전두환의 친필이 철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촛불을 든다. 29일 저녁의 2차 촛불을 ‘촛불정국과 언론 시국강연회’로 하는 것은 장수군민의 눈과 귀와 입이 진정 살아나기를 바라서다.

이런 생활 속 주민주권의 확장을 위해 시·군 지역단위의 전국 시국회의 협의체가 꾸려져도 좋을 것이다.

전희식 농부·장수군민 시국회의 추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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