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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9.02 19:40 수정 : 2013.09.02 22:12

왜 유독 한국에서만 통상임금이 사회를 뒤흔들 정도로 심각한 문제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 때문이다. 통상임금 기준으로 수당을 계산할 초과근로가 없다면 이렇게까지 심각할 이유가 없다. 한국에서 장시간 노동은 왜 개선되지 않는가. 신규로 채용하는 것보다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많은 임금 항목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면 50% 가산하더라도 장시간 노동을 시키는 것이 신규 채용을 하는 것보다 저렴한 것은 물론이고, 상여금 등을 감안하여 연간 평균하면 소정근로에 대한 대가보다도 초과근로에 대한 대가가 낮게 평가되기도 한다.

대법원은 통상임금 법리를 꾸준히 발전시켜 왔다. 그런데도 고용노동부와 경영계는 대법원 판례를 무시했고, 이제 와서는 대법원에 대해 자신들한테 맞도록 견해를 바꾸라고 압력을 넣고 있는 형국이다. 그 결과인지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로 회부하고 공개변론까지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 방미 중 지엠(GM) 회장의 한마디에 대통령은 물론이고 장관에 이어 대법원까지 요동치는 모양새여서 씁쓸하다.

공개변론이 예정된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문제가 된 임금 항목은 정기 상여금, 설·추석 상여금, 하기휴가비, 김장보너스, 개인연금 지원금, 단체보험료, 선물비, 생일자 지원금 등 소위 복리후생성 급여 또는 1임금지급기(보통 1개월)를 초과하는 것들이다.

복리후생성 급여가 근로자 지위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구체적 근로에 대한 대가라는 점은 대법원 1995. 12. 21. 선고 94다26721 전원합의체 판결이 임금이분설을 폐기하면서 확정되었다. 임금이분설 폐기는 파업 기간에 대해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관철하고자 경영계가 강력하게 주장한 것을 대법원이 채택한 결과였다. 이제 와서 경영계가 임금이분설 폐기가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난센스다.

이 임금항목들이 ‘실제 근무성적’에 따라 지급 여부와 지급액이 변동되어 이른바 ‘고정성’ 요건을 갖추었는지도 쟁점이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의 통상임금 정의 규정에는 ‘고정성’이란 표현이 없는데, 대법원이 ‘고정성’을 하나의 요건인 것처럼 설시하여 혼란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 ‘소정근로에 대한 대가’인지 여부가 핵심이므로 초과근로 여부나 성과와 관계없이 지급된다면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

시행령 정의 규정에 ‘월급금액’이라 되어 있으므로 1개월을 초과하여 1년에 한번 또는 여러번 지급되는 상여금 등은 제외되는지도 쟁점이나 이에 대해서는 대법원 1996. 2. 9. 선고 94다19501 판결 이래 확립되었다. ‘월급금액’이라 한 것은 계산 단위를 예시한 것에 불과하고, 1개월을 초과하여 지급하는 임금 항목을 제외하는 취지는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연 600%의 상여금을 2개월마다 100%씩 지급하는 경우와 매월 50%씩 지급하는 경우처럼 단순한 지급 방식의 차이에 따라 통상임금 해당 여부를 달리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

노사가 일정한 임금 항목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했더라도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의 최저기준에 반하여 무효라는 것은 대법원의 일관된 판례다. 그러한 노사 합의의 효력을 인정하면 노동자보호법인 근로기준법을 크게 훼손할 뿐만 아니라, 임금구조를 단순화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시대적 추세에도 역행한다.

갑을오토텍 사건의 원심은 법원이 발전시켜온 법리에 충실히 따른 판결을 했고, 그러한 법리를 변경해야 할 필요성은 전혀 없다. 통상임금 범위가 법원의 현재 판례대로 확대되면 기업들은 초과근로를 단축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겠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올바른 방향이다. 그런데 대법원이 입장을 바꾼다면 초과근로를 단축해야 할 필요성이 없어지게 된다. 그동안 형성된 발전 방향을 되돌리는 것이다. 강자의 압박에 밀려 약자의 희생으로 정의를 굽히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김선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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