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04 19:11
수정 : 2013.09.04 19:11
산골 마을 인심이 좋아 산골 마을에 와서 이십년 넘도록 밥장사 술장사 하는 띠동갑 진주식당 아주머니는, 손님이 오면 밥통 안에 든 밥으로 밥상을 차리지 않고 기름기 찰찰 흐르고 따끈따끈한 밥을 갓 지어 밥상을 차리신다.
그러나 세월 앞에는 아무리 좋다는 보약도 아무짝에 쓸데없어 날이 갈수록 허리가 자꾸 아파, 가까운 마을에서 농사지으며 요가 가르치는 착한 오열씨한테 지압을 받는다. 어느 날, 지압 받은 대가를 돈으로 주지 않고 마을 젊은 농부 몇몇 불러 밥상 술상 차려주신다기에, 나는 그냥 덤으로 얹혀 띠동갑 진주식당 아주머니와 처음으로 술 한잔 나누었다.
“하루는 가을걷이 마치고 산골 영감이 찾아와 천원짜리 한장을 술상에 탁 내놓으며 술 한잔 따라보라고 해. 그래도 지조가 있지 어찌? 기가 차서 눈을 흘기며 서 있었더니, 만원짜리 한장을 술상에 탁 내놓으며 술 한잔 따라보라고 해. 그래도 지조가 있지 어찌? 내가 아무리 술장사를 하지만 돈을 받고 술을 따라주는 돼먹지 못한 년은 아니지. 그래서 고함을 질렀어. 이 영감이 사람을 어떻게 보고! 모두 지난 일이지만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 그날 그때 술 한잔 공손하게 따라드릴걸. 세월이 지나 하는 말이지만, 그 영감 아직 살아 있으면 그냥 술 한잔 공손하게 따라드리고 싶네. 한평생 산골에서 농사지으며 살아오신 분한테 술 한잔 따라 올리는 게 무어 그리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여태 잘 살았든 잘못 살았든 지난 일이야. 그리고 다 내 팔잔데, 누굴 원망해서 무엇하겠냐고.”
58년 개띠나 46년 개띠나 개띠 팔자가 다 이 꼴이라,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배울 것도 많고 깨달을 것도 많아. 그 말이 딱 맞아! 세월 앞에는 아무리 좋다는 보약도 아무짝에 쓸데없어. 제아무리 잘나고 똑똑하고 돈이 많아도 세월 앞에 어찌….
서정홍 시인·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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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나의 ‘속풀이 해장국 ’이 되어줘~
▶ 이리저리 치이고 속고 속이는 세상 속에서 알딸딸해져 있는 정신과 허한 속을 따뜻한 시선의 기사로 달래주고, 냉철한 사실 보도로 제정신이 들게 해서, 또 한번 만만치 않은 세상과 마주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우리의 시원한 속풀이 해장국~ baum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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