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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카프병원 환자들의 ‘인권위원회 긴급구제 신청’ / 박용덕 |
지난달 28일 카프병원에서 치료·재활중이던 알코올 환자와 가족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를 신청하였다.
카프병원은 1997년 술에 세금을 추가로 부과하려 하자 주류회사들이 이를 피하기 위해 ‘소비자공익사업’을 하겠다고 만든 병원이다. 이 카프병원이 한국주류산업협회의 출연금 납입 거부로 지난 5월 휴업하며 사실상 운영이 중단되었다. 병원 운영 중단으로 환자들은 치료를 멈춰야 했다. 카프병원 입원환자 대부분이 민간 알코올 중독 전문병원을 전전하다 카프병원에서 재활·치료중이었던 사정을 감안하면 카프병원 휴업은 이 환자들에게 곧 ‘치료 중단’을 의미한다. 실제 100여명의 환자가 강제퇴원을 당했다. 카프병원은 민간 병원을 전전하던 환자와 가족들에게 마지막 보루였다. 그런 카프병원이 문을 닫아 재활의 희망마저 희미해지자 환자들은 중독자로 살지, 가족의 고통을 줄이는 ‘마지막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알코올 환자에게 재활·치료 중단은 치명적인 위험이다. 재발 위험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은 평생을 관리해야 하는 불치의 질병이다. 많은 경우 자신이 알코올 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가족들에게 ‘화풀이’와 ‘주사’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알코올 환자와 가족에게 단주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고 재발은 어두운 과거로의 회귀이다. 알코올 의존증의 반복은 가족들에겐 죽음을 각오하게 할 만큼 절망적인 고통 상황이다. 가족이 겪은 아픔은 자식들에게 폭력을 대물림하고 아이들 인생에도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제는 그 책임의 당사자들이 나서야 한다. 카프재단을 만든 주요 주류회사는 카프병원과 재활시설이 파행 운영되도록 방치한 일차적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정작 이들은 여론의 불똥이 자신들에게 튀어 술 파는 데 지장이 올까봐 눈치를 살필 뿐 환자와 가족들의 절절한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알코올 피해의 심각성에 비춰 이제껏 정부의 알코올 대책은 너무도 안이하다. 기껏해야 주폭자 단속과 처벌이 알코올 정책의 다일 정도이니 말해 뭣할까. 알코올 피해가 어찌 술 먹은 사람만 탓할 일인가. 누구든지 24시간 어디에서든 술을 살 수 있는 ‘술 판매 천국’을 만들어놓고 ‘조금만, 적당히 마시라’는 공익광고가 가당키나 한 건가. 이러한 광고의 효과는 국민들에게 알코올 피해를 철저히 개인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로 보도록 조장한다.
그 효과는 음주정책을 펴는 정부, 술 파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는 면죄부를 주고 알코올 의존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에게는 따가운 낙인의 시선으로 되돌아온다. 그러니 알코올 의존자가 치료가 필요한 환자임을 인정하긴 쉽지 않다. 정작 치료는 ‘환자임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치료와 재활 참여가 어려운 환경이다. 주세의 1%, 아니 술 한병에 1원의 세금만이라도 알코올 피해를 위해 쓰겠다고 했다면 알코올 피해는 공공적으로 해결되었을 것이다. 성폭력 등 범죄와 술의 상관관계, 술과 가정폭력, 술과 교통사고, 술과 질병의 상관관계는 전문가가 아니어도 가늠할 수 있다.
알코올 피해는 중독자의 인생만이 아니라 가족구성원 전체의 삶을 파괴한다. 그러니 알코올 피해보다 더 절실한 공공의료의 과제가 있을 것인가. 알코올 환자들이 ‘앰뷸런스’를 불렀다. 카프병원 환자와 가족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를 신청한 것은 알코올 앰뷸런스 사이렌이다. 10년 이상 검증된 카프병원의 통합적 치료 모델을 사회적 자산으로 보급하기 위해 ‘술 한병에 1원’이라도 써야 한다고, 이제는 국가가 공공재원으로 써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제 알코올 환자와 가족에게서 낙인의 시선으로 동정하는 마음을 거두어야 한다. 알코올 피해는 공동체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의 인정이 필요하다. 숨죽이며 눈물과 고통을 견뎌온 삶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박용덕 건강세상네트워크 상임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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