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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9.09 18:27 수정 : 2013.09.09 21:57

“순례자란 어떤 목적을 가진 방랑자입니다. 순례란 어떤 장소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순례의 의미이지요. 그런데 순례자는 어떤 것을 염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에게 그것은 평화입니다.”(평화순례자)

올해는 한국 정전협정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전협정하에서도 전쟁의 기운이 급증하는 지속적인 전시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런 지정학적 혼란에 맞서고, 이제는 일상의 한 부분처럼 되어버린 전쟁 위협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평화행진이 한반도에서 있었는데, 이 행사는 한국전쟁을 마침내 종결시킬 수 있는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 초여름, 한국전쟁에 대한 정보를 전세계의 대학 캠퍼스에 지속적으로 전하고 있는 ‘한반도 문제를 걱정하는 학자연맹’(ASCK)은 학자·예술가·활동가들로 구성된 평화행진을 조직하였다. 학자연맹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이라는 끔찍한 발언으로 인해 사태가 전쟁 국면으로 접어든 2002년 처음 결성되었다.

학자연맹이 다양한 기관과의 제휴로 조직한 이번 평화행진의 참가자들은 한국전쟁 초기 미군에 의해 대량학살이 일어났던 노근리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진원지였던 광주처럼 역사적 의미가 깊고, 문화적으로는 중요하며, 정치적으로는 민감한 지역들로 향했다.

평화기행은 아름다운 화산바위들로 가득한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마무리되었다. 태평양의 많은 섬들처럼 제주도 역시 아직도 끝을 모르는 냉전시대의 처참한 영향을 지금까지도 받고 있다. 1948년 미군정의 명령에 따라 한국군은 공산주의자로 의심되거나 이에 동조하는 이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였고, 이로 인하여 3만여명의 제주도민이 학살당했다. 냉전의 산물인 이 끔찍한 장면은 제주도 출신 감독 오멸이 만들어 선댄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차지한 다큐멘터리영화 <지슬>에 기록되어 있다.

웅장한 제주의 남부해안선이 최첨단 해군기지의 건설 때문에 파괴되고 있는 모습을 통해 냉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올리버 스톤 같은 저명인사들의 지지와 더불어 지역주민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세계 각지에서 온 활동가, 그리고 이를 우려하는 사람들은 해군기지 건설을 중단시키기 위해 열정적으로 투쟁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도 그랬듯이 이런 저항운동은 격렬한 폭력사태에 똑같이 맞닥뜨리게 되었다.

평화행진을 마무리하며 참가자들은 다음과 같이 평화선언문을 작성했다.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지점으로, 한국전쟁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분쟁을 확대재생산해왔다. 전쟁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고, 끝나지 않은 전쟁은 더 많은 고통을 야기해왔다. 평화기행을 통해 우리는 끝나지 않은 전쟁이 야기하는 적대의 악순환이 한반도와 아시아·태평양지역 주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음을 깨달았다.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채 정전체제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생명·자원·인간안보 등에 큰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한반도 주민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모든 주민들도 전쟁준비, 빈번한 충돌, 대결정치로 인해 고통받아왔다. 지금 우리는 정치적·군사적 적대관계와 군비경쟁상황을 평화협력관계로 대체해야 한다. 한반도는 더는 갈등과 분쟁의 지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남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모든 국가들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하는 평화협력의 지역이 되어야 한다. 정전협정을 맺은 지 60년이 되는 해, 2013년을 한국전쟁 종식과 평화협정 체결, 그리고 새로운 평화체제를 향한 첫해로 만들어가야 한다.”

같은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성명이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에서의 전시투어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를 결성하기 위해 모인 한국·국제 예술가단체에 의해 발표되었다. ‘60년 동안 비무장지대가 개인과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을 조사하는’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는 투어와 강연, 전시 및 설치미술을 통해 비무장지대가 한국인들에겐 그저 특별할 것 없는 지역일 뿐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관습적인 사고방식을 바꾸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예술가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중무장된 지역 중의 한곳인 비무장지대에서 ‘진정한 비무장지대’에 대한 의미와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업을 한다.

마지막으로, 색다른 종류의 평화기행이 이달에 시작된다. 뉴질랜드에서 온 오토바이팀이 북한에서 시작되어 남한까지 이르는 백두대간을 따라 평화의 라이딩을 할 계획이다. 이 기간 동안 로저 셰퍼드가 촬영한 백두대간의 풍경도 전시될 예정이다.

1953년 1월1일, 한 여성이 감색 바지에 감색 블라우스, 그리고 감색 상의를 착용하고 패서디나의 로즈볼을 떠나 북미대륙을 걸어서 횡단하기 시작했다. 그의 상의 앞쪽에는 ‘평화기행’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등에는 ‘평화를 위한 1만 마일의 발걸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10년 뒤 그는 2만5000마일, 약 4만230㎞를 여행했다. 2만5000마일은 그가 더는 측정하지 않기로 결심한 지점까지 거리일 뿐이다. 1981년 죽는 날까지 계속 걸었기 때문이다. 순례의 동기를 밝히면서 그녀는 우리의 시간과 사뭇 달랐던 자신만의 시간을 회상했다.

“나는 1952년 지금이 전진을 위한 순례에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전쟁이 격렬해지고, 매카시즘이 맹위를 떨치던 때였습니다. 의회 위원회는 사람들을 무죄가 증명되지 않는 한 범죄자로 간주하던 그런 때였습니다. 그 당시 강한 불안감이 있었고, 무관심은 불안감을 없애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가 바로 순례에 가장 적합한 시기였습니다. 왜냐면 순례자의 일이란 무관심한 사람들을 깨우고 그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이니까요.”

28년 동안 이 평화의 순례자는 펜과 칫솔, 빗, 그리고 몇 장의 편지만을 갖고서 미국 50개 주와 캐나다 10개 주, 그리고 멕시코의 여러 지역을 순례했다. 그녀는 돈 없이 다녔다. 한데서 잠을 잤고, 여러 사람들이 베푼 음식으로 끼니를 이었다. 길에서 내려오면 강연회를 열어 한국에서의 즉각적인 평화를 촉구하는 여러 탄원서에 서명을 받으러 다녔다. 한국전쟁과 휴전기간 중에 목숨을 잃은 민간인과 군인들을 기념하기 위해 미국인들은 이 탄원서를 들고 한국전쟁을 종결시키는 평화조약에 서명하도록 촉구했다. 평화촉구를 위한 탄원서나 한국전쟁 종결을 위한 평화조약 서명운동을 지원하는 세계의 많은 단체들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www.endthekoreanwar.org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번역 박정훈, 감수 이택광)

존 에퍼제시 경희대 영문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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