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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9.12 19:10 수정 : 2013.09.12 19:10

‘이지스자산운용’은 내가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재직중인 르네상스 서울호텔이 이 업체에 매각되어 존폐 위기에 놓이기 전까지는 낯선 이름이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최근에 가장 주목받는 부동산 전문 자산운용사다. 올해 상반기에만 약 1조2000억원의 수탁액을 기록했고, 지난 5월 기준으로 국내외 부동산 수십개에 모두 3조2000억원의 자금을 운용중인 큰손이다.

5월에는 법정관리에 들어선 삼부토건으로부터 자회사인 르네상스 서울호텔을 약 1조1000억원에 매입하는 조건으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지스자산운용 쪽은 이달 중에 본계약을 체결한 뒤 지금 건물을 헐고 새 빌딩을 짓는다는 계획이다. 때문에 호텔 노동자 700여명과 가족들의 생계가 한순간에 날아갈 판이다. 호텔 매입비는 잠정적으로 1조원 남짓이지만 철거비와 건설비 등을 고려하면 총 2조원 안팎의 금액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막대한 자금을 굴리는 이 회사가 설립한 지 겨우 3년밖에 되지 않는데다, 자기자본은 40억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누리집을 통해 “임원진의 막강한 영향력은 국민연금공단·한국교직원공제회·군인공제회 등 국내 연·기금의 투자를 계속 이끌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실제 이 회사 대표 김대영씨는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 건설부 차관, 산업연구원장, 주택공사 사장 등을 거쳤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낸 김호식씨는 감사직을 맡았고 이후 국민연금은 2012년 초 이지스자산운용이 서울 명동 눈스퀘어 빌딩을 2350억원에 매입할 때 유력 투자자로 참여했다.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고 3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강봉균씨도 사외이사로 되어 있다. 김대영 대표와 함께 이지스자산운용에서 3인의 개인주주에 포함된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과 조휘갑 전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은 ‘선진사회만들기연대’라는 단체의 이사장과 공동대표를 각각 맡고 있다.

결국, 자기자본 40억원의 수백배에 달하는 자금이 연·기금 등 외부의 투자자로부터 나왔으며, 천문학적인 금액을 조달하는 능력은 이 회사의 인적 네트워크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확인된다. 반면 운영의 투명성은 미흡한 상황이다. 올해 2월 이지스자산운용은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과 주요 주주 변동 내역을 보고·공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금융위원회로부터 과태료 3750만원, 임직원 견책·주의 등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부동산 자산운용사는 임대 수익이나 매매 차익에 치중한 나머지 기업과 종업원의 안정적인 생존과 발전에는 관심이 부족하다.

1988년 개관한 이래 25년 동안 르네상스 서울호텔은 해마다 수십억원의 이익을 내왔다. 그런데 대주주인 삼부토건이 부실화하면서 한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는 호텔만 존폐의 위기에 놓였다. 모회사는 부실경영의 책임을 우량 자회사에 떠넘기고, 한 나라의 장·차관과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사회지도층이 ‘투자’라는 명목하에 죄 없는 노동자와 가족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르네상스 서울호텔의 노동자들이 한여름의 장마와 땡볕에도 휴무를 반납한 채 여의도 이지스자산운용 건물 앞에서 호텔 철거를 반대하며 100일이 넘게 싸우고 있는 이유다. 삼부토건과 이지스자산운용은 지금의 졸속 매각을 원천 무효화하고, 노동조합과 즉각 대화에 나서야 한다. 금융당국도, 자신의 적은 자본금으로 남의 엄청난 돈을 주무르면서 노동자를 위기로 몰아대는 부동산 자산운용사에 감독과 규제를 더 철저히 해야 함은 물론이다.

서재수 르네상스 서울호텔 노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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