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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9.21 18:37 수정 : 2013.09.21 21:05

서울 금호동 금옥초등학교 학생들이 무상급식 시행 첫날인 2011년 3월2일 줄지어 서서 급식을 받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10년의 친환경 무상급식으로 촉발된 복지논쟁이 다시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상보육까지 겹쳐서 재점화하고 있다. 2010년의 복지논쟁이 한반도 역사상 최초의 대중적 복지논쟁으로 평등과 교육, 보편이란 개념으로 이뤄졌다면 작금의 복지논쟁은 복지정책의 전개 여부를 오로지 재정의 관점으로만 접근함으로써 지난 4년간의 성과를 후퇴시키려는 다분히 퇴행적 의도로 진행되는 듯하다.

이는 복지에 대해 국민적 요구를 단지 수렴하는 차원일 뿐이라고 해석하는 단순 발상의 현실적 결말이다. 이 발상은 복지가 전 사회의 중장기 발전 전망이나 삶의 질, 공동체의 지속성처럼 구조적이며 가치적인 것들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처음부터 이 부분에는 무지하거나 성장 위주의 개량적 수치에 매달리는 관성이 낳는 무시에서 기인한다. 재정만 투여한다고 복지가 이뤄지지 않는다. 정책 대상을 둘러싼 기존의 구조와 그 밑에 흐르는 기저의 지배적인 논리, 수년 혹은 수십년 쌓여온 관행 및 그 속에서 내재화된 관성들을 드러내지 않고는 지속가능한 복지의 토대는 이뤄지지 않는다.

학교급식이 그렇다. 한달 150~300품목의 ‘다품종 소량’이 필요하기에 급식=유통이라는 논리가 지배적으로 작용해, 기존의 학교급식은 시장 의존을 넘어 시장 종속이 되었다. 유통업체들의 품목별 단가를 기준으로 최저가 낙찰을 하게 되는 전 과정이 관성화될수록, 그리고 글로벌화되는 식품산업에 의존할수록, 식단에 사용하는 식재료가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제조되는지는 점점 더 알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 틈새에 저질 식재료의 혼입, 원산지 둔갑, 포대갈이, 첨가물의 주재료 대체가 상존하며, 식중독, 아토피, 비만, 밥상머리 교육의 실종이 나타났다. 돈을 주고 시장에 맡기면 된다는 정책 관행은 결국 급식을 영세업체 간의 경쟁으로 점철되게 하고 그럴수록 가장 존중받아야 할 생산자는 ‘을’의 지위로 추락했다.

이런 논리와 관행을 드러내어 급식을 바꾸고자 하는 조직이 바로 친환경급식 지원센터이다. 지역마다 강조점이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얼굴이 보이는 관계’의 형성과 이를 통해 기존의 급식 생태계를 ‘신뢰 생태계’로 전환하고 있는 것은 공통적이다. 서울의 경우, 생산지가 없기에 전국의 9개 광역도시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각 지역의 생산조직과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하였다. 직접적인 관계의 형성은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안심지킴이단과 학부모 커뮤니티의 활동으로 ‘얼굴이 보이는 관계’를 넘어 ‘마음이 보이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이 속에서 식재료의 안전성과 안심성은 높아지고, 공동의 구매 효과로 경제성과 물류 효율성도 높아지고 있다.

울산 북구의 경우는 전무하던 친환경 생산자가 친환경급식 지원센터에 의해 30여명 새롭게 탄생하면서 착한 생산과 착한 소비를 엮는 선순환 경제를 이뤄가고 있다. 시장만 속절없이 바라보던 광주 남구의 경우도 친환경 생산자들이 지역과의 관계를 새롭게 형성하고 있다. 경기도 하남·시흥·부천·안양·군포·의왕·여주와 서울의 서대문·성북·노원·은평, 그리고 지방의 안동·나주·순천·천안·익산·횡성 등도 생산과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식생활 교육을 통해 환경과 건강 그리고 배려에 대한 공동체적 가치를 인식해 가고 있다. 이제 더는 이 지역에서 생산자는 소외되지 않으며 소비자인 학교는 시장의 이윤 중심 폭력성의 희생양이 되지 않는 토대를 다지고 있다.

친환경 무상급식이 지역마다 정책으로 채택된 지 3년을 경과하고 있는 가운데 친환경급식 지원센터를 매개로 복지의 토대가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시설이나 장치 위주의 물적 자본이 대규모로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뢰와 상호 호혜 및 관계망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새롭게 형성하였다. 이리 형성된 사회적 자본은 정책의 굳건한 토대가 될 것이다. 이는 재정을 투입하고는 기존의 논리와 관행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과 상상력을 가지고 기존의 논리와 관행을 바꾸려는 의지에 따른 결과이다.

콜롬비아 가비오타스 공동체의 창시자 파올로 루가리는 “사막은 상상력의 결핍”이라 했다. 복지를 사막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오아시스로 만들 것인가는 전적으로 상상력을 동반한 정책 수행의 의지에 달려 있다. 재정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친환경 무상급식은 이미 사회적 자본이고 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

김형근 서울광역친환경급식통합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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