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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순천에서 보내는 정원으로의 초대 / 성종상 |
지금, 우리 아이들은 많이 아프다. 세계 최고 수준의 높은 자살률과 스트레스 지수는 더는 어른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한국 청소년의 자살, 우울증, 사이버 폭력 사건이 연일 뉴스에 등장한다. 게다가 컴퓨터와 인터넷, 첨단 스마트폰이 일상을 지배하게 되면서 우리 아이들은 이전 세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고통에 놓여 있다. 이런 기기에 항상 노출돼 있는 아이들은 전두엽 성장이 저해되고 정서가 황폐해진다. 온갖 자극과 스트레스가 넘쳐나는 열악한 상황에서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삶의 ‘공간 환경’을 다루는 전문가로서 나는 크게는 자연에서, 작게는 정원에서 그 해결책을 찾아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불렸던 미국의 동화 작가 타샤 튜더는 자기 아이들이 자연과 교감하는 기쁨과 감사를 경험하도록 키워냈다. 100권이 넘는 동화집마다 따뜻하고 서정적인 그림이 가득한 것은 오로지 자연 속에서 몸소 겪은 소박하고 진솔한 삶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행복을 살 수는 없지만 찾을 수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백방으로 행복 찾기에 나섰던 독일의 저술가 크리스토프 코흐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정원 가꾸기를 추천했다. 쓰레기로 덮여 있던 빈터를 정원으로 만들고 가꾸면서 맛본 즐거움과 만족감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그는 몸소 배웠다.
도시에서 자연과 접하는 가장 일차적인 장소로서 정원은 단순히 보고 즐기는 차원 이상의 효용을 준다. 근육을 사용함으로써 얻는 효용이 신체적 건강이라면, 자연과 접촉하고 교감하면서 얻게 되는 것은 정신적 위안과 심리적 회복 효과다. 나아가 정원은 이웃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이제 정원은 ‘가장 순수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곳’(프랜시스 베이컨), ‘영혼의 안식처’(헤르만 헤세)라는 찬미를 넘어 공동체와 사회의 소통을 위한 사회적 자본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영국은 물론이고 뉴욕과 디트로이트 등 미국의 대도시들은 이미 정원을 통해 피폐해진 공동체를 되살리려 노력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 자연과 교감한 경험은 아이의 심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개미 연구로 유명한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바이오필리아’(생명사랑)라는 신조어를 통해 인간의 본능에는 생명을 사랑하는 경향이 내재돼 있으며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을 설파했다.
나는 아이들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정원부터 가꿔보라고 권하고 싶다. 혹 한뼘 누울 자리도 없다고 항변하는 분들에겐 그저 머릿속으로 즐겼던 조선 선비들의 의원(意園), 곧 ‘꿈과 상상의 정원’을 만들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옛 선비들은 자신이 바라는 마음속 정원의 모습을 글이나 그림으로 그려서 지인들과 나누고 즐겼다. 현실의 제약을 훌쩍 뛰어넘어 상상력으로 심미적인 세계를 창조하여 향유했던 것이다. 그런 경지가 아니더라도 창가의 작은 화분이나 담 밑의 좁은 화단, 옥상의 상자텃밭 같은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다. 참다운 ‘정원살이’란 규모나 화려함보다는 마음에 달려 있다.
지금 전남 순천시 순천만에선 한국 최초의 국제정원박람회가 폐막(20일)을 앞두고 있다. 정원 기행의 즐거움을 아직 맛보지 못했다면 서두르길 바란다. 청명한 가을바람을 느끼며 정원이 주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볼 좋은 기회다. 지친 마음을 남도의 푸른 하늘에, 아름다운 정원에 내려놓자.
성종상 조경가·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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