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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채동욱 단상 / 이근엽 |
인생 80대의 4차 연도를 항해중이지만 필자는 꽤 좋은 기억력을 향유하고 있는 편이다. 반전시인 스티븐 스펜더의 시를 참조하려고 <문학사상> 1977년도 10월치를 펼쳤더니 한완상(당시 서울대 사회학과 해직교수)의 ‘새벽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실려 있고, 책 속엔 누렇게 바랜 시험지 두장이 끼워져 있었는데 필자가 고등학교 3학년 영어를 가르칠 때 작성했던 77년 4월치 영어 보충수업 교재였다. 그때 3학년 1반 반장이 떠올랐는데 그는 필자를 많이 따랐고 여러가지 생각을 공유했던 것 같다. 그 학생이 바로 전 검찰총장 채동욱이다. 필자는 그가 최근에 이룩한 ‘위업’을 보면서, 그가 법 이론은 서울대 법학과에서 배웠고 인간과 민족에 관해서는 이근엽의 영향 아래에 있지 않았겠느냐 하는 좀 무례한 생각도 해 본다.
1960년대 초 케네디 대통령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유명한 민권 행진의 대열이 워싱턴 디시로 가까워질수록 흑인 백인 할 것 없이 엄청난 군중이 그를 따랐다. 케네디 대통령은 존 에드거 후버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불러 경위를 물었다. 후버 국장은 “소련에서 자금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조사해 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며칠 뒤 후버는 보고하기를 “한 건 올렸습니다. 마틴 루서 킹에게 숨겨둔 여인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라고 하면서 소실의 이름, 나이, 그들이 묵었던 호텔 등을 밝히고 킹 목사를 묵사발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케네디 대통령은 “아니, 소련과의 커넥션을 찾아서 국사범을 색출하라고 했더니 남의 사생활이나 캐고 다녔는가”라고 힐책했다. 30년대 암흑가의 왕 알 카포네와 싸웠고, 40년대 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50년대 매카시 선풍의 현장에 있었던 후버의 연방수사국 30년 전설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90년대 초 흑인 인권단체들은 킹 목사의 기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해 달라고 레이건 대통령에게 탄원했으나 레이건은 이를 거절했다. 흑인 인권단체들은 제2의 민권 행진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대한 레이건의 답이 희한했다. “나는 백인들을 동원해서 더 큰 반대시위를 벌이겠다.” 결국 당시 부통령이었던 아버지 부시가 대통령이 되어 마틴 루서 킹 목사 기념일을 제정함으로써 킹 목사의 명예를 유지하며 미합중국의 격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것이 문명세계의 관행이다.
채동욱 전 총장을 두고 필자는 1946년 초대 검찰총장 이인 변호사 이래 실로 67년 만에 진짜 총장이 나왔다고 생각해 보았으나 이제 상황은 그때보다도 훨씬 더 엄중하다. ‘인간 박근혜님’을 둘러싼 그 소문, 그가 그렇게도 신임하는 듯한 김기춘 비서실장, 황아무개 장관 등의 부도덕성은 일일이 나열하기에 지면이 아까울 정도다. 반면 지난 정권의 어느 누구도 손을 대지 못했고 박 대통령도 기피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에 관한 가시적인 성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투옥,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 등 사회정의 실현을 향한 채 총장의 도덕적 신념에 찬 행보는 부도덕한 정권에 의해 좌절되었다. 그의 행적은 ‘위업’이었다.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섬에서 전사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는 무능한 상급자 간신들에 의하여 또다시 투옥되어 옥사했을 것이다.” 장지연으로 돌아가서 외쳐 본다. “시일야방성대곡!” 케네디 대통령과는 정반대로 공권력에 의한 사생활 털기를 적극 성원한 박근혜 대통령의 이 부도덕한 정권에서 이 나라의 격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채동욱 전 검찰총장! 아픔을 참으며 한완상 선생과 함께 “새벽을 기다려” 봅시다. “진리는 따르는 이가 많고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는 그 신념을 갖고 야만의 이 시대를 이겨 나갑시다.
이근엽 교육학 박사·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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