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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23 19:10 수정 : 2013.10.23 22:21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창조경제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박근혜 정부를 설명하기 어렵다. 모든 부처가 창조경제로 자기들의 업무를 포장한 지 오래다. 뭘 하겠다는 건지 모호하다는 비판에도 한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을 파헤쳐 자연 생태계를 망친 것처럼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창의적 문화와 지식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창조경제를 지식재산에 기반을 두고 실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민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돈 되는 특허로 만들어주겠다며 특허청과 업무협약까지 맺었다. 심지어 ‘1가구 1지식재산 갖기 운동’을 창조경제 실현 계획으로 내세운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주로 기술(technology) 지식이다. 이 지식을 ‘재산’으로 만들어 일자리도 창출하고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은 거꾸로 지식 생태계를 망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지식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의 공유와 개방이다. 그런데 지식재산은 지식을 사적 소유로 만드는 지식의 상품화를 강조한다. 이는 주로 특허제도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특허는 기술 지식을 특허권자 이외에는 아무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함부로 사용했다가는 징역 7년 이하의 중형에 처할 수 있다. 이러한 특허제도를 통해 기술 지식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자본주의적 상품으로 바뀐다. 미래부가 계획하는 것처럼 집집마다 특허권을 갖고 모든 국민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모조리 사적 상품으로 바뀌면 사회적으로 필요한 수준 이하로 기술 지식이 소비되는 ‘사유지의 비극’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창의적 아이디어만 잔뜩 있으면 무슨 소용인가. 전부 사유화되어 아예 사용할 수 없거나 사용하려고 해도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면 지식경제는 불가능하다.

사례를 들어 보자. 구글이나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성공적인 인터넷 기업 중 누구도 특허를 그릇 삼아 창업하거나 성공하지 않았다.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라는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와 휴대전화기의 성과 역시 특허와 무관하다. 오히려 특허제도가 없었다면 더 큰 성과를 냈을 것이다. 애플과 삼성 간의 특허 분쟁에서 보듯이 특허권은 시장 선도자가 경쟁자를 축출하려는 무기로 더 많이 활용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펙(APEC) 정상회의에서 창조경제의 대표 사례로 언급한 싸이의 ‘강남 스타일’ 역시 지식재산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도리어 ‘강남 스타일’은 초기에 지식재산을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널리 공유되어 인기를 얻게 되었다.

따라서 창조경제엔 지식이 아닌 지식재산이 핵심이고 특허가 없으면 기술혁신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주장은 실증적 증거도 없으면서 특정 집단이 퍼뜨리는 위험한 이데올로기다. 이들은 창조적 아이디어의 성과물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분배할지 분배정의에는 관심이 없고 지식재산을 돈 버는 수단으로만 바라본다. 이들의 정책에는 창작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자 독식의 시장논리만 존재한다. 그래서 기술 지식의 성과가 정작 필요한 자들에게 돌아가는지보다는 시장에서 가장 비싼 값을 쳐줄 환경이 더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지식재산을 일방적으로 강화하기만 하는 지식재산권 최대주의를 재검토하라는 유엔 인권위원회의 권고는 창조경제를 지식재산 기반으로 실현하겠다는 박근혜 정부를 향한 권고로 들린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그 성과물을 이제 경제 정책의 대상으로 국한하지 않고 복지의 문제, 인권의 문제로 확대해 검토해야 한다. ‘과학의 진보와 그 혜택을 향유할 권리’가 세계인권선언에 포함되어 있다. 지식을 자본주의의 상품으로서 사적으로 소유하는 데에만 골몰해서는 창조경제의 실현은커녕 인권침해와 지식 생태계의 파괴라는 부작용만 낳을 수 있다.

남희섭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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