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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18 19:08 수정 : 2013.11.18 19:08

소설가 장정일씨가 ‘장정일의 독서일기’(11월4일치 25면)에서 존 몰리뉴의 <아나키즘: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책갈피, 2013)을 호되게 비판했다. “모로코 독립이라는 비장의 패”를 가로막아 스페인 혁명을 패배로 몰아넣은 것은 “공산당의 술수” 때문이었는데, 몰리뉴가 “혁명이 실패한 탓을 아나키스트에게 전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다. 우선 몰리뉴의 글을 정확히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인민전선 정부는 이런 방법(모로코 독립을 허용하고 혁명을 전진시키는 것)을 모두 극력 반대했는데, 스페인 노동운동 내 최대 경향이던 아나키즘의 지도자들은 그런 인민전선 정부를 지지했다.”

몰리뉴는 여러 저작과 기사에서 스페인 혁명 패배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으로 아나키스트가 아니라 공산당의 인민전선 정책을 지목해 왔다. 최근 출간된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에서도 “이것(스탈린의 인민전선 정책)은 혁명을 저지했을 뿐 아니라 스페인 노동계급의 사기를 떨어뜨려 프랑코의 승리를 도와줬다”고 지적했다. 몰리뉴와 견해를 같이하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크리스 하먼도 <민중의 세계사>에서 “좌파 중에서 반혁명 정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한 세력은 공산당이었다”고 못 박았다.

장정일씨 말대로 “공산주의(스탈린주의) 저술가들은 좀체 이 ‘흑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여 왔다. 예컨대 친공산당 지식인들은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토대로 삼아 만든 영화 <랜드 앤 프리덤>이 개봉하자 “아나키스트 영화”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장정일씨는 이들과 몰리뉴를 동일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랜드 앤 프리덤>을 만들어낸 주요 인물들(감독인 켄 로치, 시나리오를 쓴 짐 앨런, 역사 자문으로 참여한 앤디 더건)은 아나키스트가 아니라 몰리뉴와 같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이었다.

그렇다면 아나키스트 지도자들의 행보에 대한 몰리뉴의 비판은 과도하고 불공정한 것일까?

스페인 혁명 당시 아나키스트의 영향력은 기층 노동조합과 노동자위원회에서 두드러졌고, 이 조직들이 실질적으로 사회를 통제하고 있었다. 아나키스트 지도자들은 노동자들의 공장 통제와 농민의 토지 점거를 독려하고 모로코 독립을 지지해 프랑코의 근거지와 점령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게 만들 수 있는 영향력이 있었다. 여러 위원회와 시민군을 한데 결집하려 했다면 전국적 노동자·병사 평의회를 건설해 프랑코를 물리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아나키스트 지도자들은 힘의 집중(중앙집권화)이 새로운 독재를 낳는다며 이런 전략을 한사코 거부했다. 공산당의 정규군 창설 주장이 힘을 얻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아나키스트 지도자들은 독자적 권력 대안이 없으니 결국 인민전선 정부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고, 존 몰리뉴가 지적하듯 “투쟁을 실패로 이끌 게 뻔한 전략의 책임도 떠맡게” 된 것이다.

오늘날 세계를 변화시키려 하는 사람들은 스페인 혁명의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 그러려면 아나키스트들의 패배와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트로츠키의 말대로 “우리는 진지하게, 정직하게 배우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김태훈 도서출판 책갈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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