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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전기 사용의 비효율성이 문제다 / 윤기돈 |
2035년까지 우리나라가 에너지를 어떻게 공급하고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큰 그림인 2차 에너지기본계획 민관 워킹그룹 권고안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논란 중이다. 원전이 몇 기 더 지어질지가 핵심 쟁점이다. 일부 언론은 원전 비중이 축소돼 비싼 전기요금을 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국민을 겁박한다. 정작 이번 권고안에서 꼭 풀어야 할 과제로 꼽은 전기요금과 유류요금의 역전에 따른 가열·건조 분야의 비효율적 전기 사용과 광역정전을 막기 위한 안정적 전력망 구축 문제에는 오히려 관심이 없다.
이런 와중에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번 주에 산업용 중심의 요금 인상안을 발표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몇% 오르는지가 주 관심사다. 그러나 산업용이 얼마나 오르고 가정용 누진 구간이 어떻게 바뀌느냐보다 중요한 게 있다. 다름 아니라 밤 11시부터 아침 9시까지 사용하는 전기에 부과되는 경부하 요금을 얼마나 현실화하느냐다. 2012년 자료를 보면, 이 시간대에 한국전력공사는 약 81원/㎾h에 전기를 구입해 62원/㎾h에 판매해 약 19원/㎾h의 손해를 본다. 석탄과 원자력만으로 심야 전기 사용을 감당 못해 값비싼 가스와 유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값싼 전기요금이 가열·건조 등 비전기 분야의 전기화를 부추겼다.
이 결과, 제조업 분야의 2010년 가열·건조용 전기설비 소비량이 2001년보다 약 400%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공장시설을 가동하는 동력용 전기설비 소비량이 20% 감소한 것에 비하면 얼마나 폭발적으로 증가했는지 확연해진다. 따라서 경부하 요금을 현실화하며 장기적으로 가스유류요금과 전기요금의 왜곡된 가격체계를 바로잡아 비효율적 전기 사용을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현이 중요하다. 정부가 산업계 눈치를 보며 정확한 정책 의지를 표명하지 않는다면 철강업의 전기로처럼 잘못된 신규 시설투자가 늘어날 것이고 국고 손실은 막대해질 것이다.
다음으로 밀양 송전선로 건설 지연으로 대표되는 전력공급망 안정성 문제다. 밀양을 보는 두 개의 시선이 있다. 하나는 인권이며, 다른 하나는 님비다. 그러나 전력공급망 안정성과 관련해 핵심 요소는 지역 주민 반발에 따른 공사 기간 지연이 아니라, 지금처럼 발전소가 한곳에 집중돼 대단지화되고 전력 소비지가 수도권에 집중되는 구조로는 광역정전을 막을 기술적 방법이 한계에 부딪힌다는 문제다. 수도권 중심으로 전력 사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서해안·인천·울진·고리와 같이 몇곳에 발전소가 집중된 구조 때문에 인출선 고장으로 광역정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의 해결을 위한 유일한 방안이 이번 권고안이 제안한 분산형 발전시스템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발전사업자 쪽은 송전선로 이용 요금을 차등화하여 소비지 근처에 발전소를 만들게 하고, 전기사용자 쪽은 거리별 요금을 차등화해 발전소 인근에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요금 차등 폭을 현실화하고 실행 시기에 대한 구체적 계획도 세워 발표해야 한다. 정부는 이 관점에서 밀양 문제도 다시 봐야 한다. 과연 고리에 원자력발전소를 10기씩이나 가동하는 게 전력공급망 안정성 측면에서 타당한지, 신안성에서 북경남까지 765㎸ 송전선로 건설 계획 자체가 백지화된 시점에서 여전히 765㎸ 송전선로를 주장하는 것이 합리적인지를 검토하고 그에 따른 대안을 세우는 것이 옳다.
윤기돈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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