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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20 19:21 수정 : 2013.11.21 17:08

박근혜 대통령이 엘리자베스 여왕 부부와 함께 백마가 이끄는 황금마차를 타고 버킹엄궁으로 향하는 화려한 장면을 우리 국민들은 텔레비전 방송을 토해 자랑스럽게 지켜보았다. 민주주의를 낳고 꽃 피운 영국은 한편 독재자의 딸이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성공 사례인 한국에서 선거를 통하여 여성대통령이 되어 나타난데 대하여 흥미를 갖고 환영하였다. 추석 연휴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였던 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반등하였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주요 4국 중 처음으로 방한하였다. 그런데 푸틴의 정상회담 지각으로 외교적 결례니 아니니 하며 한때 화젯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20세기 들어서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정상외교를 중요한 외교수단으로 등장시키고 일반화하였다. 세계화와 국제협력의 증대에 따라 G-8, G-20, APEC 등 다자 정상외교도 정례화되었다. 국가원수들은 정상외교를 선호한다. 화려한 의전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고, 때로는 주요 현안의 극적 타결로 지지율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골치 아픈 국내정치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가장 많은 정상외교를 펼친 클린턴 대통령은 “대외정책이 더 재미있다. 왜냐면 의회의 간섭이나 반대를 덜 받고 정책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재임 중 54회에 걸쳐 133개국을 방문하고, 229일을 해외에서 보냈다. 물론 최강국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정상외교의 장점은 국가원수 간의 만남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정상 간의 상호 이해와 신뢰 및 친선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주요현안을 극적으로 통크게 타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어느 대학의 국제정치학 교재는 한국전 이후 국제사회에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중 하나는 2000년 남북한 정상이 처음 만나는 순간이라고 기술했다. 만남 그 자체가 진전과 상호이해를 가져온 상징적이라는 것이다. 중소국가의 정상들이 미국, 중국 등 큰 나라를 의례적으로 방문하고 있는데, 이는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 이들 정상들과 친선 및 우호를 도모하여 양국 간 관계를 증진하는 바탕으로 삼고자하기 때문이다. 정상들이 만나 중요이슈나 난제들을 한칼에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정상외교의 최대효과이다. 1978년 미국 카터 대통령,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 이스라엘 베긴 수상이 모여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관계정상화가 이루어진 것이 바로 그러한 사례이다.

그러나 정상외교가 항상 순작용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정상회담은 외교의 최고 최후 수단이다. 정상은 자신의 언급을 쉽게 철회할 수 없다. 키신저는 “정상 간에 협상할 때에는 도피구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정상회담 과정에서 서로 오해를 하거나 케미스트리가 맞지 않을 때 오는 결과도 만만치 않다. 1938년 8월 영국의 체임벌린 수상이 히틀러와 정상회담을 하였으나 히틀러의 속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결국에는 나치 독일의 체코 점령을 막지 못하였다. 정상회담에서 정상들은 국내여론을 의식함에 따라 유연성을 제약받고 심리적 부담도 크다. 실패했을 때의 타격도 커서 차라리 만나지 않음보다 못한 경우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럽순방은 과거 대통령들이 해왔던 세일즈외교에 추가하여 문화협력 분야로 정상외교의 지평을 넓히고, 러시아 대통령의 방한과 함께 취임 첫해 핵심 권역에 대한 외교를 마무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박 대통령의 정상외교 가운데 지적해야 할 일들이 있다.

첫째, 정상외교의 기본 목표인 주요 정상과의 친선 우호를 증진하고 협력을 다짐했으나, 주요 현안문제에 관한 특별한 진전은 없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경우에서 더욱 그러하다. 둘째, 집권 첫해 내치에 역점을 두어야 함에도 그렇지 않음으로써 난마처럼 얽힌 국내정치와 민생을 외면한 셈이 되었다. 셋째, 대통령의 순방국 현지 교포와 유학생의 대통령 부정 시위는 전두환, 노태우 시대 이래 처음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수행한 어느 의원의 망발은 박정희 시대 동베를린사건 처리 망령을 떠올리게 한다. 넷째, 문민정부 이래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해외순방에서 환영을 받았으며,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투사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 각별한 환대와 존경을 받았다. 다섯째, 푸틴 대통령의 지각은 우리 쪽 잘못도 아니고 또 지나갈 수 있는 일인데 청와대가 굳이 외교적 결례가 아니라고 해명했다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여섯째, 정상외교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지지율 상승의 재미에도 유혹받지 않으며, 기존의 정부 외교역량을 높여 각종 외교현안을 중견국의 위치에서 차분히 해결하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박 대통령은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롤모델로 삼는다 한다. 여왕은 후진국 영국을 유럽 최강국으로 만들고 문화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내정에 성공하고 외교와 국방을 튼튼히 하여 세계로 진출하였다. 처녀왕으로서 백성을 사랑하고 의회를 존중하였다. 박 대통령도 먼저 국내정치와 민생문제에 집중하고, 국민과 소통하고 국회를 존중하며, 피와 땀으로 쟁취한 우리 민주주의를 후퇴시키지 않도록 앞장서야 한다. 외국에서 환대받으며 골치 아픈 국내정치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국가원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승만 대통령처럼 “외교에는 귀신, 내정에는 등신”이란 말이 되풀이되어는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롤모델 여왕처럼 성공한 국가원수가 되기를 바란다.

송영오/민주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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