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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교황 비오 12세와 교회의 정치 참여 / 고연미 |
천주교 전주교구 정의구현 사제단이 지난 대선에서 정보기관의 광범위한 대선개입 책임을 물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 수사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체제나 정당, 권력자에 대해 교회가 비판하고 저항하는 것을 잘못된 일이라고 말한다. 교회와 사제는 정치에 간섭해서도 안 되고 그런 일은 교회와 사제의 본분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정교분리를 말하며 교회가 올바르지 못한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것을 정교분리에 어긋나는 일인 것처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교분리의 원칙은 국가가 특정 종교를 옹호하거나 국교로 삼거나, 공산주의 국가처럼 모든 종교를 배척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헌법에서는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갖는다”는 한마디로 명시해 놓았다.
우리나라 헌법은 어느 조항에도 ‘종교인은 정치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금지하지 않고 있다. 그런 법이 있다면 그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반민주적 악법이다. 국가는 종교인이 정치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금지하는 법이 없지만 가톨릭교회는 성직자의 정치 참여가 가져올 혼란을 염려하여 스스로 성직자의 정치 참여를 규제하는 교회법 조항을 두고 있다. 교회법 285조 2항은 성직자가 국가권력의 행사에 참여하는 공직을 맡는 것을 금지하고, 287조 2항은 성직자가 정당이나 노동조합의 지도층에 능동적 역할을 맡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교회법은 성직자가 세속에서 어떤 직분을 갖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지 공동선을 증진시키기 위해 정치적 발언을 하거나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세상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천명했으며 교회 구성원의 사회 참여를 독려하고 권장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삼중 사명 가운데 하나인 예언직, 곧 사회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모든 정치적 행위는 교회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교황 비오 12세는 나치의 인종차별과 전쟁, 유대인 학살을 여러 차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비판했지만 공식적으로는 중립을 표방했고 나치와 히틀러를 직접 거명하여 비판하는 교회 성명서를 발표한 적은 없었다. 이 때문에 교황 사후 비오 12세는 나치의 만행을 방관했다는 비판을 듣게 되었다. 이에 대해 교회는 교황이 직접 나치와 히틀러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면 오히려 더욱 큰 보복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나치 정권은 교황이 나치와 히틀러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한다면 엄청난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위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치는 1941년 네덜란드 주교단이 나치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을 때 5만명의 유대인을 체포하여 아우슈비츠로 보냈다. 당시 교황 비오 12세는 네덜란드 주교단의 성명서를 지지한다는 성명서를 미리 작성해 놓고 있었지만 나치의 보복이 시작되자 그 성명서를 직접 불태웠다고 한다. 교황 비오 12세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나치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지 않음으로써 어쩌면 많은 유대인을 구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유와 결과가 무엇이건 사람들은 교황이 직접 나치를 비난하고 나치에 저항하도록 공식적인 견해를 표방하지 않은 것에 대해 지금도 비판하고 있다. 교회가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은 것에 대해 역사적 낙인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교회가 정치에 엄정하게 참여하기를 요구하는데 일부 국민과 정권은 교회의 정치 참여를 교회 본분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비난한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분을 성인품에 올려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대한민국 공동선을 위해 그 많은 정치적 발언과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그분을 성인품에 올리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 가톨릭교회는 비오 12세 교황을 성인품에 올리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비오 12세가 “하지 않은 정치적 행위” 때문에 그분을 성인품에 올리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고연미 가톨릭 신자·광주 북구 두암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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